‘예수의 부활’을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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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을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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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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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윤목사<서울교회>


‘역사적 예수 연구’의 단초가 되는 것은 ‘예수의 부활’이다. 그러나 이성중심의 역사 비평적 연구가들은 처음부터 ‘예수의 부활’을 부인함으로써, 초월적인 예수 사역에 대한 복음서의 모든 증언들을 거부하고, 예수를 단지 도덕적 윤리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산 청년으로 이해했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문제해결은 ‘예수의 부활’의 수용 여부에 달려 있다. 곧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역사적 예수’와 ‘예수의 선포’ 그리고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의 연속성을 곧 하나님 말씀의 화육(요1:14), 즉 하나님의 인간으로 낮아지심(빌2:6)과 그의 부활승천에서 그 해결의 단초를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부활 승천은 그의 화육, 인간됨, 죽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이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의 화육도 역사적 사건이고, 그의 화육이 역사적 사건이라면 예수의 부활 승천은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엡4:9-10). 그렇다면 여기서 결과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나사렛 예수는 태초에 계시던 분이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으로서 다시 오실 인자이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진 위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높아진 위상’과 일치됨을 고백했다.

SBS가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 다큐멘터리는 기독교의 뿌리가 이교의 신화라고 주장했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화를 유대의 영지주의가 수입하여 예수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영지주의와는 전혀 다른 종교다.

성경은 영지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오히려 기독교는 예수 공동체임을 말씀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료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에 대하여 두 가지 종류의 자료를 갖고 있다. 그 하나는 크리스천들 손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다른 하나는 불신자들의 기록물이다.

유대인 역사가의 연구나 바벨론의 탈무드에도 예수에 대한 말과 그의 죽음과 제자들 이름까지 명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신화적 존재라는 주장을 오늘날도 많이 한다.

사실 양식사 비판 연구를 하고 있는 디베리우스, 불트만, 빈센 테일러, 그란트 F.C 등은 초대교회 교부들의 역사적 증언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기록자들이 전설이나 민속이야기 또는 예수 신화를 창출해 낼 수 있는 필요한 시간적 길이를 간과하고 있다.

전설이나 민속이야기가 형성되려면 적어도 100년이 지나야 한다. 탈무드는 300년 내지 400년이 걸려 완성되었고 Epidauros의 전승은 200년 이상 걸렸다. 그러나 양식 비판론자들은 불과 40년(30-70A.D) 이내에 예수 전승이 생겼다고 본다.

뱌울이 그의 최초 서신을 52년경 기록했다면 갈보리 사건 후 불과 20여년만에 이 전설(신화)이 형성됐다는 셈이다.

우리는 20년 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하듯 당시엔 많은 목격자들이 살아 있을 때 누가 신화를 만들 수 있었겠나. 무엇보다도 그들은 분명한 목격자들의 현존을 무시했다. 나사렛 예수는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시고 지금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신다(마28:20).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선포한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역사의 예수만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구원주요, 섭리주며, 심판주 되심을 고백하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나사렛 예수이심을 믿고 선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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