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말을 다스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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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말을 다스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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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1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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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기목사<예수로교회>

일선 경찰서나 법원으로 접수되는 투서가 1년 평균 60여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1일 투서 민원이 평균 2,310건이나 된다는 말이다. 투서내용의 대부분이 말로 인한 화근이라고 한다. 우리의 한 마디 말이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음을 자초하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사약을 받아 하룻밤 사이 삼족이 떼죽음을 당하는 광경은 사극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성경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고 하였다.(잠18:21) 마지막 심판 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말을 심판하신다. 자기가 한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그 말로 정죄함을 받는다.(마12:37) 홍수 때 생수가 더 귀한 법이다.

강단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말 가운데 한마디 예수생명의 말씀이 더욱 귀한 시대가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없는 환경의 징조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다.(창1:2) 하나님의 말씀의 다스림이 없는 곳에는 멸망의 바벨탑이 세워진다.(창11:9) 법궤와 돌판이 없는 곳에는 가증한 금송아지 우상이 만들어진다.(출32:8) 말 많은 세상에 말씀으로 임하신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요1:14) 오직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는다. 예수가 생명이다.

말의 반복은 여론을 형성하고 말씀의 반복은 생명을 살린다. 말이 많은 곳에 마귀의 진지가 구축된다.

작금의 유명 연예인의 자살 쇼크가 우리 사회에 긴 여진을 남기고 있다. 세인들의 상실감과 충격의 파장이 진폭을 더해간다. 경찰은 사인을 사이버의 악풀이 화근이 되어 우울증으로 인한 충동적 자살로 규명하고 있다. 우리를 더 당혹케 하는 것은 연이어 자살한 유명 연예인들이 하나같이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교회의 역할과 성도의 사명을 진맥해보는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매몰차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고인의 마지막 선택은 공인답지도 성도답지도 못하다. 스타의 책임도 갈채만큼이나 엄연하다. 성도의 본분은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다. 자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토록 사랑한 자녀들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우울증을 술에 의지한 무기력한 믿음이 우리를 당혹스럽고 저리게 만든다.

절망을 확대하면 죽음에 이르고 은혜를 확대하면 생명에 이른다. 평소에 세간의 악성루머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신앙생활에 좀 더 마음을 쏟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깊이 남는다.

사이버 공간엔 얼굴도 이름도 없는 악풀이 때론 천사로 때론 악마로 둔갑한다. 말이 입을 벗어나면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게 마귀의 덫이다.(엡6:12) 주관적인 팬텀(phantom)에 빠진 나머지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이 덫에 걸려 황당한 피해를 자초하게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짖으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믿음은 결정적일 때 말씀으로부터 작동된다. 생명의 역사는 진리가 작동되어야 한다. 여론은 진리가 아니고 순리도 진리가 아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열고 키보드를 두드리면 그것이 바로 여론이 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누가 게이트 키퍼(gate keeper)가 될 것인가? 인간의 말들이 자꾸 자멸의 바벨탑을 쌓아 올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바벨탑을 허문다. 마땅히 할 일은 안하고 말만 무성하다. 우리는 말이 너무 많다. 말을 말씀으로 다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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