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리온 선교비전 꿈꾸는 복음선교회 대표 김 영 삼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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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리온 선교비전 꿈꾸는 복음선교회 대표 김 영 삼 장로
  • 정재용
  • 승인 2008.09.24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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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모의 열정따라 죽기까지 헌신할 것”

“우리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이지 주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는 일에는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세계에서 선교사를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하는 선교의 나라 한국. 하지만 팔순의 어머니를 아프리카 위험지역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아들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준다’는 복음선교회 대표 김영삼장로(영광교회, 박정규목사)는 지난해 사랑하는 어머니를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이라는 나라에 선교사로 파송했다.

흰머리가 적잖이 섞인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 털털한 웃음소리 뒤에 소박한 미소. 김영삼장로도 곧 예순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인데 ‘어떻게 팔순 노모의 아프리카 선교를 받아들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 다. 아무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기에 거저 준다고 하지만 팔순 노모를 오지로 보내드린 그의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장로는 지난 날의 이야기를 담담히 꺼내며 가족들의 선교열정이 얼마나 깊었는 지를 들려주었다.

고향이 이북이셨던 아버지 고 김찬명목사(예장합동 한남노회 증경노회장, 부천영광교회 시무)는 6.25 전쟁 통에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다가 결국 제주도까지 내려가게 됐다. “전쟁 중에 한경직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이 배에 몸을 싣고 내린 곳이 제주도였데요. 그래서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죠. 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제주영락교회를 섬기다가 경남, 경북을 거쳐 부천영광교회에 올라오시게 된거죠.”

복음을 전할 곳을 찾아 가족들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전쟁 후에도 아버지가 은퇴한 뒤에도 그랬다. “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시무하시던 교회에 남아있으면 방해가 된다고 깨끗하게 물러나셔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었어요. 그리고 은퇴하시고는 여러 교회를 찾아 설교를 하시며 죽는 날까지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시고자 노력하셨죠.”

그런 아버지의 노력이 1989년 복음선교회의 창립으로 결실을 맺고 김영삼장로 가족의 선교 열정은 세계 열방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도 선교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셨었어요. 하나님께서 예비하심으로 외삼촌도 함께 동역하기로 하시면서 복음선교회라는 선교단체가 세워지게 됐어요. 은퇴 목사인 아버지 김찬명, 은퇴 전도사인 어머니 김흥환, 외삼촌 김태환집사가 선교단의 창립 멤버가 되신거죠.”

6.25때 피난으로 시작된 떠돌이 선교단 김영삼장로 가족. 결국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향해 나가는 선교사 가족으로 사용하시려는 큰 계획이 있으셨던 것 같았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영락교회에서 영어예배를 드리시는 중에 영어를 알아들으시는 체험을 하셨던거에요. 어머니께서는 ‘늦은 나이에 하나님께서 외국어의 은사를 주시나’ 했는데 그게 아니셨데요. 하하하.”

하지만 어머니 김흥환전도사는 그때부터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은퇴를 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실 크고 신비한 계획이 분명히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학구열은 어느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어요. 영어성경을 구입해서 잠을 설치시며 읽으시고 기독교TV의 영어강좌를 얼마나 열심히 쫓아다니셨던지 지금도 가끔 방영되는 영어강좌 방송을 보면 어머니께서 청중석에 앉아계신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그런 언어에 대한 열정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는지 복음선교회는 현지인 선교사만을 파송하는 전략을 가지고 원주민선교를 표방하고 있다. ‘원주민 선교는 원주민 선교사로’라는 목표를 가지고 국내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현지인들을 찾아 선교단에서 현지로 파송하고 7년간의 후원 뒤에는 독립을 시키는 전략으로 현지 문화장벽도 쉽게 허물고 경제적 부담도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아들. 아버지 김찬명목사는 2004년 하늘나라에 가기 전 김영삼장로에게 선교단을 잘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미 아버지의 사역으로 많은 열매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장로의 꿈은 실로 소박했다. 아버지께 받은 유산이라고는 선교단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20개국에 38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어요. 11개국 25명은 독립을 시켰고 현재는 9개국 13명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죠. 나이지리아, 케냐, 탄자니아, 시에라리온, 카메룬, 인도, 미얀마,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어요. 이제 하나님께서 많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도록 축복해주실 때까지 열심히 키워야죠.”

김장로의 얘기를 듣던 중 조금 생소한 이름의 나라가 있어 ‘시에라리온’에 대해 물었더니 어머니를 선교사로 파송한 나라라고 소개했다. “시에라리온은 유명한 나라에요. 영화에도 나왔는데 간간히 나오는 이름이라 생소하게 들릴 뿐이죠. 지난해 상영했던 블러드다이아몬드라는 영화의 배경도 시에라리온이에요. 모르셨죠?”

다이아몬드 생산국으로 영국의 식민지를 거쳐 내전이 있었던 나라. 20여만명이 죽고 200만 난민이 발생하고 사지가 절단된 불구자가 4천명에 이르는 나라. 영화에서 봤던 그 참혹한 땅이 바로 시에라리온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선교사로 보내드린 아들이나 선교사로 가신 어머니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보통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1991년부터 하신 영어공부가 이제 조금 빛을 발하실 것 같으셨나봐요. 오랜 기간을 준비해오셨으니 그 열정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죠. 어머니께는 팔순이라는 나이가 이제 하나님께 더 충성할 수 있는 때라고, 더 많은 영혼을 구해야 할 때라고 확신하고 계세요.”

비행기를 수차례 갈아타고 33시간을 날아서 시에라리온의 수도에 도착하면 8시간 차를 타고 도착하는 반다파다에서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어머니께서 많이 야위셨더라고요. 하지만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셨어요. 그곳 아이들은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축구단 아이들은 한국말로 찬송가를 부르고 어머니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며 동고동락하고 있으니 행복하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김장로가 시에라리온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단지 어머니 때문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일들을 많이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1996년 파송했던 다니엘 목사가 16,000평의 땅을 기증해서 교회를 지었어요. 그런데 그 지역 추장들이 교회가 하는 사역에 고맙다고 10만평의 땅을 기증을 한거에요. 그래서 지금 예수마을을 짓고 있답니다.”

후원자가 5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선교단이지만 하나님께서 후원하고 계시기에 복음선교단에는 크고 놀라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예수마을에는 현재 19동의 건물이 지어졌어요. 그 안에 비품들도 하나씩 채워지고 있죠. 동료교수가 영화 상영을 위해 기증해준 프로젝터는 현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밤마다 성화를 상영하고 있답니다.”

내년 2월 CLC 신학교 개교를 앞두고 있는 시에라리온 예수마을. 김영삼장로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시에라리온에도 풍족히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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