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三角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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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三角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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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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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목사<기독교한국성서하나님의교회>


삼각산은 한강과 함께 서울을 상징하는 산이라 할 수 있다. 삼각산은 민족사의 한가운데 우뚝 서서 그 시대마다 시대정신을 담은 이름으로 불리어져왔다. 삼국시대는 부아악 또는 횡악이라고 이름하였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삼각산, 화산, 화악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삼각산 또는 북한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삼각산이 기독교와 연관되어진 것은 일제말엽 신사참배 등 기독교의 탄압이 심해지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이 산속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부터이다.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많은 기독교지도자들이 삼각산에 모여 금식하고 기도하게 된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수천 명의 성도들이 밤마다 산상에 모여 기도하였다. 많은 한국교회의 부흥사들이 한번쯤은 이 삼각산에서 금식하고 기도했을 것이다. 이 삼각산의 기도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방방곡곡에 기도원이 생기고 수많은 기도제단들이 생겨났다.

삼각산의 기도는 인근 절간들과 무당들과의 영적 전쟁이었다. 1968년 1.21사태이후 북한산을 타고 청와대를 습격하려는 북한군의 침투를 막기 위해 북악스카이웨이 등 군사목적의 시설들이 건설되고 평창동 일대에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영적전쟁이 극에 달하더니 1970년대 후반 유신정권에 의해 모든 기도원이 헐려지고 마침내 국립공원 자연보호라는 미명하에 지금은 아예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삼각산 기도의 불길이 꺼지면서 전국의 교회가 세속화되고 부흥이 주춤해지고 한국경제도 어려워지고 있다.

서슬 퍼런 유신정권아래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곳은 사찰들이다. 특히 육영수여사는 한국불교중흥에 크게 헌신했다. 지금 삼각산에는 기독교인들의 기도의 불길이 끊어지고 문화재보호라는 미명하에 사찰들만이 속속 중건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삼각산 도선사의 중건이다.

도선사는 신라 말엽의 유명한 도승이었던 도선 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도선은 승려로서 보다는 음양풍수설의 대가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1960년 초 고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첨담대종사의 호국염원에 크게 감화를 받으면서 대덕화란 불명을 받는 등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1968년 도선사에 ‘호국참회원’을 짓게 되는데 ‘호국참회불교’란 신라의 통일염원, 고려불교의 호국염원, 조선불교의 구국염원, 현대불교의 평화 염원에 입각하여 미신불교가 아닌 수행불교, 이론불교가 아닌 실천불교, 관념불교가 아닌 생활불교로 불교 부흥을 꾀하자는 청담대종사의 사상위에 세워진 것이다.

1975년 삼각산 북편에서는 이 도선사의 “마음의 광장”에 이르는 4km의 아름답고 장엄한 산악관광도로와 500m 가량의 경내도로가 박대통령내외의 도움으로 완공되고, 삼각산 남쪽에서는 모든 기도원이 헐리고 기도하던 주의 종들이 쫓겨나는 상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기독교인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종교편향문제가 국론을 분열하는 이때에 새삼 국민들 앞에 묻고 싶다. 기독교가 정부의 혜택을 받은 것이 무엇이냐고… 좌파정권하에서 기독교를 대표하는 어른들이 구속되고 대형교회들이 공중파 방송 등을 통해 사기집단처럼 매도되고, 재개발지역에서 교회들이 무참히 헐리는 것이 현실 아닌가.

삼각산은 한국기독교의 성지다. 기도의 동산으로 회복시키자. 그리고 기도하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금식하고 부르짖던 그 삼각산 기도의 열정을 다시 한 번 불사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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