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들의 삶을 되짚어보며 우리도 다시 첫 신앙이 회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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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들의 삶을 되짚어보며 우리도 다시 첫 신앙이 회복되길”
  • 현승미
  • 승인 2008.09.11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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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이기풍 손양원목사 다큐멘터리 제작한 권순도 감독

▲ 손양원 목사의 딸 손동희 권사와 함께.

3년 전 주기철목사의 일대기를 영화화 해 스물 여섯의 젊은 권순도감독(청량리교회·이병철목사)은 잠깐 동안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 ‘그의 선택’은 어려운 제작 환경 속에서 탄생된 영화였다. 시나리오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주기 충분했다. 그러나 물질적 부족함이 작품 안에 그대로 드러나 감독 스스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사람들의 관심도 잠시뿐, 이내 사그러들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총격전, 자동차 격투신, 전쟁영화 등 훗날 헐리우드의 잘 나가는 감독이 되길 희망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린 그의 첫 작품은 기독교영화였다. 세상적으로 보자면 그의 첫 영화는 실패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셨다. 권감독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주기철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집하고 조사한 자료들이 아까웠다. 훗날 자신에게도, 또 많은 기독후손들에게도 많은 감동과 자료적으로도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당시 그분들의 모습을 증언해 주실 분들이 몇 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주광조장로님이나 손양원목사님의 막내따님도, 이기풍목사님의 따님도 이제는 모두들 연로하시거든요. 그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생전의 모습을, 그리고 그분들의 생생한 증언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권순도감독은 주기철 이기풍 손양원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완성시켰다. 불과 몇 주 전 세 번째 이야기인 손양원목사의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첫 영화 때처럼 사람들의 반응은 빨리 오지 않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그의 신앙과 신념을 주변의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주기 시작했고, 그의 작품들도 입소문을 통해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상영을 원하는 교회에 직접 달려가기도 하고, 거리가 멀거나 주일 상영을 원하는 교회에는 DVD(018-411-9067)를 권해준다. 세상의 흥행대박 영화처럼 큰 이슈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듯이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삶이 조금씩 한국교회에 생생한 장면, 장면으로 스며들며 깊이 마음에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따라나서지만 어린 시절 그는 때론 거짓말도 하고, 시험 때는 커닝도 하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았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어릴 때는 형식적인 믿음뿐이었어요. 그땐 정말 비양심적인 행동도 많이 하고, 삶 자체가 평탄치 않았어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기독교인인데 기독교인답지 않은 삶을 살아서 이렇게 자꾸 힘든 일만 생기는 건 아닐까?”

중학교 2학년. 그는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일단 성경에서 시키는 대로 해보자고 마음 먹고 펼쳐든 것이 십계명. “십계명 중 여덟 계명은 모두 하지 말라는 계명이었고, 두 계명만이 하라는 계명이었지요. 부모 공경해라. 그리고 안식일을 지켜라. 잘 모르지만 일단 주일성수를 지키자고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그때부터 막연하게 꿈 꿔왔던 그런 것들이 아주 쉽게 해결 됐어요.”

군대시절부터 여행지에서, 제대 후 영화를 시작할 때도 주일 성수만은 지킨다는 그의 작은 믿음을 하나님은 크게 봐주시고, 연단 가운데에서 더 큰 기회를 내어 주셨다.

“그때 이미 군대 내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던 때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어요. 제가 입대했을 때 중대장이 새로 부임해와 주일에도 군기훈련을 하느라 예배 드리러 갈 시간을 주지 않았지요. 저는 당연히 대대장 면접을 요청했지요. 마침 대대장님은 자리를 비우시고, 중대장님과 면담을 하게 됐어요.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영창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저는 굽히지 않았지요.”

결국 중대장은 군종병과 예배드릴 시간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또 잠시 후 훈련병 모두에게 종교활동을 허락했다.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계획했을 때도 그는 주일성수를 잊지 않았다. 혹여 교회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혼자서 설교집을 읽으며, 예배를 드리겠다고까지 마음먹었다.

그의 여행지는 무려 62개국. 하나님은 작은 것까지도 잊지 않고, 그를 살펴 주셨다. 네팔, 요르단 등 교회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던 나라에서조차 그가 교회를 찾아 예배드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그렇게 군 제대 후 한국영화계에 뛰어들었다. 호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덕분에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 호평을 받았다. 스케일 면에서나 모든 면에서 6~7년 전에 고등학생이 만든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뛰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일성수였다. 제작비 절감, 배우들과의 스케줄 조율 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국영화계에서 주일성수를 챙기는 것은 곧 영화를 못 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주일성수로 인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가운데 또 다른 길을 예비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두렵지 않았다. 결국 모든 제안을 거절했고, 그렇게 주기철목사의 삶을 영화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명감을 갖고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그동안 거짓된 이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은 손양원목사의 딸 손동희권사는 그를 의심했고, 만나주지조차 않았다. 이기풍목사의 딸 이사례권사와 또 다른 증인 좌선호권사는 노환으로 인터뷰를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몇 차례의 거절과 몇 차례의 엇갈림 가운데 힘들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힘들게 3편의 작품을 완성해놓고 그는 요즘 기독교작품이 아닌 일반 작품을 구상중이다. 한 작품을 위해 시나리오에서 제작까지 또 마무리 돼서 세상에 나오기까지 2천여차례 읽고 봐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처음의 마음을 잃을까 걱정이 돼서다. 그는 당분간 첫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외도 아닌 외도를 할 계획이다.

“그분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했을 당시에는 외부적 압력으로부터 흑백으로 판단하기 쉬운 세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외압도 없고 자유분방하지요. 성경에는 분명한 선이 기록돼 있는데, 현재는 타협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 시키잖아요. 제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최소한 죄를 회개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0~30년 후에는 완벽한 시나리오에 완벽한 제작기술을 동원해 다시 한번 주기철목사의 영화를 새롭게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하는 권순도감독. 작지만 훗날 한국교회에 큰 신앙의 밑거름이 될 그의 영화 세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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