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을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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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을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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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8.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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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목사<이수중앙교회>


느브갓네살 왕 당시 바빌론 성 정문에는 이스달 성문이 세워져 있었고, 그 성문 벽에는 이스달 여신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성문을 통해서 성안으로 들어서면 곧게 뻗은 대형 도로가 나있고, 그 주변에는 각종 신전과 궁전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 도로 맨 끝에는 어마어마한 마르둑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신전 앞에는 느부갓네살이 세운 하늘을 찌르는 듯한 대형 금 신상이 우뚝 서있다. 이것은 마치 6.25 전쟁 당시 서울에서 제일 높은 4-5층짜리 화신백화점을 보다가 전쟁으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이후에 미국에 가서 102층이나 되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보았을 때, 그 웅장함과 장엄함에 질려버리는 것과 흡사한 일이었다.


제2 이사야와 함께 포로로 끌려왔던 많은 유대인들은 바빌론의 영화에 눈이 멀게 되었고, 바빌론 신 마르둑 이야말로 승리의 신이요, 참 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제2 이사야가 무엇을 믿고, 무슨 배짱으로 바빌론의 막강한 국력, 그처럼 위풍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서있는 저 거대한 마르둑 금 신상을 향해서 감히 “너는 마르는 풀과 시드는 꽃일 뿐이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는 비록 포로의 몸이 되어 노예로 끌려가면서도 보기만 해도 압도당하고 질려버리게 될 저 거대한 마르둑 금 신상을 보고도 “저것은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세워진 우상인 것이지, 결코 참신일 수 없다”고, 비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저 조각품들은 불을 보고도 따뜻한 줄도 모르고,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일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46:8)고 했던 것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은 망했지만, 야훼 하나님은 망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야훼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너희는 태초부터 이루어진 일들을 기억하라”( 46:9)고 선포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지,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는 거이다.

“이스라엘이 아직까지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직 형벌의 날이 끝나지 안했기 때문이지, 결코 하나님의 팔이 짧아서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사야가 영원하다고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십계명 곧 모세법전이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혼이요. 그들의 정신이요, 얼이었다.


제2 이사야가 포로의 몸으로 끌려가면서도 그들의 국력과 이방신상의 거대한 위용 앞에 압도당하지 않은 것은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이기리라”는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신앙이 있는 것인가? 선지자 제2 이사야는 “바빌론의 멸망을 내다보았고,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사야는 바빌론 포로기의 암흑시대에 살면서 터널 끝에서 동터오는 새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2 이사야는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지자 이사야의 선포는 포로 생활을 하면서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마치 푸른 하늘에 천둥번개가 치듯 전혀 예기치 못한 놀라운 충격이었다.

이것은 새 세상이 열린다는 신호탄이요. 희망이요. 환희요. 감격이었다.


우리는 금년으로 해방 63년을 맞이했다. 남과 북 모두가 경제난에 봉착하고 통일의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이 백성을 위로하는 길은 마르둑의 황금신상이 아니라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빛이 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한국교회 신자들은 얼마나 책을 읽는가, 교회는 질적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독서의 계절 9월을 앞두고 독서캠페인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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