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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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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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3.1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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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목사<예장 통합 기획국장>

 

재의 수요일에 시작되었던 사순절의 기다림이 주님의 부활로 응답되어지는 날이 우리 앞에 있다. 우리를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역을 통하여 수없이 많은 변화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셨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 관계의 재설정, 우리와 이웃 사이, 관계의 회복, 남자도 여자도 종이나 자유자도 다 함께 참여하는 구원의 역사. 예수님의 사역의 절정이랄 수 있는 부활절을 맞는 믿는 이들의 마음은 설렐 수밖에 없다. 특별히 부활의 현장을 처음으로 발견한 예수님의 여인들을 기억할 때마다 기독여성들의 마음은 더욱 설렌다.  그 부활 역사의 현장에 여인들이 있었다. 부활을 증거한 첫 번째 제자들은 여인들이었다는 사실이 현재 교회 안에서의 그 어떤 성차별도 이기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여기 함께 나누고 생각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배경은 모 교회의 인사위원회 안이다. 모 부서의 승진 대상자를 놓고 심의 하는 중이다. 승진대상자는 두 명인데 그 중 한 명은 여성으로 현재의 직급으로 승진한지 약 4년 정도가 다른 승진대상자 보다 빠른 경우이고, 다른 한명은 그 여성과 같은 직급이지만 그 여성 보다 4년 정도 늦게 현재의 직급에 다다른 경우였다. 인사위원들이 어떻게 결정할 지 고심하던 중 터져 나온 한마디, “당연히 가장이 승진을 해야지요.” 남성 직원이 승진했다. 그리고 여성 직원은 심하게 울었다.

위의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가장인 남성들이 부활에 가장 먼저 다다랐어야 옳다. 또한 남성 제자들만이 가장이라는 이유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부활을 독점하는 것이 옳다. 예수의 부활을 감격스럽게 기쁨으로 받아들이려면, 부활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는 것이 우선이겠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을까? 세상의 모든 남성들과 가장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일까? 남성 제자들을 위하여,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을까?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알린 여성들은 가장이 아니라서 그 역할의 심각성과 중요도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일까? “당연히 가장이 승진을 해야지요.” 라고 말씀하신 그 목사님은 가장이 아닌 사람들은 부활의 기쁨에서도 제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이다. 

한국교회는 부활을 기뻐하며 연합예배로, 음악예배로, 사회봉사로 예수님의 사역과 기쁜 소식을 세상을 향해 열심히 외친다. 연합도, 예배도, 봉사도 모두 중요하지만 그 밑바닥에 이렇게 해결되지 않은 성차별과 인종차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별 등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면 부활의 그 큰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 그리고 우리들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시는 부활이 우리 믿는 자 들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누가복음 1장 47절~53절 중에서)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불렀던 찬양의 노래가 이번 부활에는 우리 모두에게 기억되고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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