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순교한 주채원목사 신앙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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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순교한 주채원목사 신앙 기린다"
  • 이현주
  • 승인 2007.07.2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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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마지막주일을 순교자기념주일로 지키는 행화정교회
▲ 용인에 마련된 순교자 기념비는 고 주채원목사를 기리고 있다.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말이 있다. 넓게는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지기까지, 좁게는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교회의 역사는 순교와 함께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 외국인 선교사와 교인들의 순교는 물론, 한국전쟁 등 역사적인 비극을 겪으면서 많은 순교자를 낳았으니 그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교회를 지켜 내기 위해 순교한 수많은 목회자들의 영을 기리는 교회는 흔치 않다. 교단 차원에서 순교자 기념주일을 마련하거나 역사에 기록된 이름난
순교자만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대부분이다.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행화정교회(담임:박남현목사) 매년 7월 마지막주일을 순교자 기념주일로 지킨다. 2000년 초반부터 시작한 순교자기념주일은 이제 행화정교회의 자랑이자 감동적인 예배로 자리매김했다. 80년 역사를 이어온 행화정교회에는 어떤 순교의 역사가 숨어 있는 것일까.


남대문교회 기도처소로 아현동에 세워진 행화정교회는 1926년 창립예배를 드리면서 새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시 행화정교회는 뜨거운 기도의 열정이 있는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시대의 고난 속에서도, 그리고 공산주의가 득세하면서 나라가 갈리기 전까지도 행화정교회는 믿음의 처소로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순교당한 고 주채원목사.

고 주채원목사가 행화정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때는 1946년. 함경북도 출신인 주목사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37년 함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기풍목사가 전도인으로 있던 함흥중앙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던 주채원목사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한 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해방의 부푼 꿈도 잠시, 공산당의 행패는 갈수록 심해지고 회유와 위협에 맞서 싸우던 주채원목사는 월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내와 어린 6남매를 데리고 고향을 떠나 타지로 내려온 후 다행이도 경기노회의 주선으로 마포구 아현동에서 목회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아현동은 극빈층이 주류를 이루던 동네로 교회 재정이 어려워 사례조차 받을 수 없었다. 생계를 위해 주목사는 당시 변호사였던 교회 장로의 주선으로 마포 형무소 교도과장 일을 병행했다. 그의 일은 사상범을 교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렵게나마 교회를 섬기던 중,
집 주인의 사정으로 예배처소를 내어주게 되었고 교회는 갈 곳 없는 상황에 처했다. 주목사는 전 교인과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중에 부지가 마련되고 약 1년에 걸쳐 성도와 목사가 힘을 모아 교회를 신축했다. 첫 담임목회 사역에서 하나님께 새성전을 헌당하게 된 주목사의 감사와 감격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6.25전쟁이 터지고 곧바로 서울이 점령됐다. 전쟁 전 사상범을 교화시키는 교도과장으로 재직했던 주목사는 인민군 보안대원들의 체포대상 1호로 지목됐다. 언제 어느 때 인민군이 들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성도들은 위험을 눈치 채고 담임목사의 피신을 권고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내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교회를 지켰다. 북한에서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주목사로서는 또다시 하나님의 집을 비워둘 수 없다는 신념뿐이었다.  1950년 7월27일 결국 주채원목사는 공산당
들에게 체포됐고 이후 다시 교회로 돌아오지 못한 채 순교하고 말았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성전을 지키고 목사의 본분을 다했던 주채원목사의 이야기는 행화정교회의 역사에 그동안 입으로만 전해져왔다.

하지만 행화정교회 담임 박남현목사는 교회의 기초가 되고 역사의 증언으로 남은 주채원목사의 순교를 공식적으로 기념하기로 했다.


박목사는 “순교자의 영은 고귀하고 거룩하게 기념되어야 마땅하다. 교회의 씨앗이 되고 거름이 된 순교자 주채원목사의 사역은 짧지만 의미있는 것으로 공산 치하 속에서 교회를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성도들에게 순교의 거룩함을 알리기 시작한 행화정교회는 순교자 기념주일에 성만찬예식을 진행하며 순교자의 영과 교제하는 뜻깊은 시간을 갖는다. 순교자 기념예배 중에 성만찬까지 나누는 것은 극히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주채원목사의 차남인 주요섭장로(신광교회)는 “순교자에 대한 교계의 역사의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행화정교회가 아버지의 순교일 전후로 기념주일을 지키고 성만찬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주장로는 또 "아버지 순교 후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웠던 어머니는 순교자 가족이 모여사는 모자원 `순혜원`에서 6남매를 키워냈고 50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를 회상하며 행화정교회를 찾게 됐다"고 밝혔다.

행화정교회의 순교자 기념사업은 기념주일 예배를 넘어서 역사로도 남길 예정이다. 뉴타운 재개발로 교회 이전 건축을 앞둔 행화정교회는 순교자의 공로를 성도들에게 길이 전하기 위해 기념예배실 봉헌을 구상중이다.


박남현목사는 “목회자에게 예배실은 그 역사의 현장”이라며 “순교자 기념채플을 만들어지면 성도들이 순교자의 영과 하나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념 채플에 주채원목사의 기록을 남겨 믿음의 후손들에게 죽음으로 지켜낸 고귀한 신앙을 영구히 가르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29일 드려지는 순교자 기념주일예배에는 차남 주요섭장로를 비롯해 주채원 목사의 유가족이 참석해 행화정 교회 성도들과 깊은 교제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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