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통령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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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통령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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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1.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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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목사<초동교회>


오늘 아침 가만히 시(詩)의 향기에 젖어 본다. 정 지용 시인의 ‘향수’를 읊어 본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윤 동주 시인의 ‘서시’를 가슴에 담아 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난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아름다운 시어(詩語)를 마음에 품으니 영혼이 맑아진다. 정선된 말의 향취 때문이다.


우리는 말의 힘을 안다. 말의 능력도 안다. 한 마디의 말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고, 한 마디의 말이 한 사람의 영혼을 죽일 수 있음도 안다. 말은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표현함도 안다. 말은 그 자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 말을 듣고 그의 사람됨을 가늠하기도 한다.


또 우리가 믿는 것은 말은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말씀(말)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로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씀(말)의 성육신(成肉身)”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시각으로 생각할 때, 말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것이 아니다. 말이 사건을 품고 있기에 말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옛 선비들은 입이 온갖 화(禍)의 근원이라 하여 말을 조심했다. 묵자(墨子)의 언유삼법(言有三法)에 따르면 말에는 세 법도가 있다. 성인은 말과 행동에 어긋남이 없는지를 생각한 후에 말해야 하고,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헤아린 후에 말하고, 정치와 백성의 실상에 비춘 실천 전망을 세우고 말하라고 했다. 언행이 일치되어야 하며, 자신의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해선 안 되며, 공언(空言)이 되어서도 안 됨을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지난 해 우리는 귀 고생이 많았다. 개의 해(丙戌年)였으니 세상이 위기라고 경고하는 소리가 높았던 것은 그런대로 참고 들어야 했다. 보수니 진보니, 극우니 극좌니, 친미니 반미니 하는 사사건건 편가르기 줄긋기의 시끄러운 소리들은 우리 국민을 패거리 싸움터로 이끌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소리요, 부동산의 실패한 정책들로 인한 부익부빈익빈의 비정상적인 사회 현상으로 들려지는 불만과 불평과 한숨과 절망의 소리들은 경제생활의 불균형은 사회 혼란의 원인이 되니 조심하라는 소리로 들려진다. 북한의 핵실험은 휴전 상태의 우리에게 안보의 경계심을 일깨우면서 우리의 안일하였던 평화 통일에 대한 관심과 노력과 관여를 높여야 함을 알리는 소리로 들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작심 발언”은 그 표현의 부적절함이 도를 지나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만 하다.


대통령의 말은 대통령 개인의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행위도 그렇다. 대통령에게 말을 마음대로 할 자유도 없느냐고 항변한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공인(公人)으로서의 말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청소년들에게 모방을 통한 문화 제공자가 되기에 매스컴이 주목하는 것처럼, 대통령의 언행은 국민 정서, 그것도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막말을 내뱉는 심정을 백보 양보하여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은 다듬어진 말을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음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로 이해되기에 분노가 생긴다. 그것도 정치적으로 계산된 말이라고 한다면, 돼지의 꿀꿀거리는 욕심의 배설물이 아닌가!


아, 올 해(丁亥年)에는 아름다운 시어(詩語)와 같은 ‘사람의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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