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미국 테러사건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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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미국 테러사건을 보며
  • 승인 2001.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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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살길을 열어주라

고양이와 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백이면 백 “고양이가 이긴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독 안에 든 쥐는 고양이에게 덤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봤다. 이 기사에는 쥐가 고양이의 얼굴을 물고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사진이 실렸다.

고양이가 쥐를 쫓다가 같이 물통에 빠졌는데 물통 속에서 고양이와 쥐가 30분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물고 죽어도 놓지 않는 쥐를 보고, 사람들이 고양이가 다칠까봐 싸움을 뜯어 말렸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극단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면 쥐도 고양이에게 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왕 죽을 바에야 “나죽고 너 죽자”하고 덤비면 둘 다 크게 다치거나 죽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사는 방법이 있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이 팔린 책 중에 스테반 코비라는 사람이 쓴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The Seven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제4장 제목은 ‘둘 다 이기는 방법을 모색하라’(Think Win/Win)이다.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길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장사를 하고 무역을 해도 나만 벌려고 하지 말고 남도 이익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정치를 해도 상대를 완전히 죽이려 하지 말고 상대의 살 길을 열어 주면서 공격하라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승진을 하려고 남을 해치거나 죽이지 말고 다른 사람도 살리고 나도 살라는 것이다. “남을 죽이면 나도 죽고 남을 살리면 나도 산다”는 간단한 원리다. 필자의 스승인 그랜 스타슨 박사는 독일의 통일과정을 조사하여 ‘7가지 평화구현 원칙’을 찾아낸다.

그 중요한 내용은 공동안보를 확실히 하고 내가 먼저 솔선하여 군비를 축소하며 적극적으로 평화의 길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평화를 구축하려면 ‘상대방보다 먼저 평화로운 일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상대의 화해 손짓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상대에게 화해를 청하라는 것이다. 이것도 ‘Win/Win’의 원리이다.

지난 주 미국에서 엄청난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의 부를 상징하며 세계경제 중심지인 세계무역센터의 빌딩이 주저앉고 최강국임을 상징하는 페타곤빌딩이 파손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세계경제가 마비되고 그 여파가 확산되고 있다. 천인공노할 사건이다. 모든 국가들이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시하며 미국을 위로하고 있다. 죄없는 양민을 해치고 살상하는 이런 테러행위는 인류역사에서 없어져야 한다. 부시정부는 복수와 응징을 천명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군사적 대응에 찬동하며 협조를 약속하고 있다. 테러범들의 신원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미국은 정의의 이름으로 테러범과 테러지원국에게 복수와 응징을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수전을 보며 속 시원해하며 박수를 칠 것이다. 흉악한 테러범들은 대가를 치룰 것이다. 세상의 법칙은 복수의 법칙이다. 특히 조그마한 게 까불면 본때를 보여주어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세상의 법칙을 따르면 끝없는 복수와 싸움이 계속되게 마련이다. 피가 피를 부르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랑 원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상대가 살길을 마련해 줘야함을 가르친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싸워도 다음 순간에 화해할 방안을 모색한다. 기독교인이 싸우는 목적은 상대방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평화를 사수하려는 것이기에 싸워도 상대의 살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적대국가의 사람이라고 무조건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적대국가라고 해도 힘없는 상대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해 주는 것이 기독교인이 취해야 할 태도다. 그래야 둘이 공존할 수 있다. 힘있는 자는 그 힘을 사용하여 힘없는 자에게 봉사하며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도우라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시정부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한다. 힘으로 누르기보다는 힘으로 봉사하는 정책을 고려할 때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와 사랑의 본을 보이셨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셨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먼저 대접하라!”. 예수님의 법칙은 화해와 평화의 법칙이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쥐도 코너에 몰리면 죽을 힘을 다해 고양이에게 덤빈다. 이번 일로 인해 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기도했으면 한다.

장도곤(숭실대 기독교 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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