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회주의 권위주의 구조 폐쇄성 ‘위험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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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회주의 권위주의 구조 폐쇄성 ‘위험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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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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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교수<한남대학교 역사신학>


16세기 종교개혁은 중세교회의 교회론에 대한 개혁이었다. 중세의 교회는 개인의 신앙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은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은총전달은 성사를 집행하는 성직자들의 손 안에 성령의 역사를 가두어 버리는 오류는 낳게 했다.


종교개혁 이전에도 교회의 부패에 대한 여러 차례의 개혁운동이 있었다. 중세 교회 부패의 근본원인은 군주들의 성직임명이었다. 군주들은 교회재산을 악용했고 무자격 성직자들을 임명하여, 성직매매와 교회의 질적 타락을 가져왔다. 이러한 부패에 대한 개혁은 한편으로 수도원으로부터 일어났다. 청빈, 정결, 순명을 모토로 하는 수도원의 이상은 노동과 기도, 설교와 교육을 통해 사회와 교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다른 한편 교황권 강화는 군주들의 탐욕에서 교회를 지키는 방편이었다. 그러나 교황권이 확보된 이후 중세 교회는 성례전적 교회론을 기초로 세속권력을 유지했고 이것은 교리와 윤리의 부패를 가져왔다.


인문주의자들은 교회의 윤리를 비판했지만 교리의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다른 개혁운동들과 달랐던 점은 성서 안에서 복음을 재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종교개혁의 원리는 중세 객관주의 교회관을 깨뜨리고 ‘성과 속’ 이분법에 기초한 교회의 권위를 해체시켰다.

구원은 성례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에 있는 것이 되었다. 교회의 권위는 교황이 아니라 성서에 주어졌다. 만인제사장설이 확립되어 교회는 “성도의 공동체”라는 평신도적 교회관이 성립 되었다. 교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도의 믿음을 돕는 도구라는 선교적 지평이 열리게 되었다.


교회개혁의 원리는 사실상 윤리적인 것에 앞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한국교회 안에는 개혁해야 할 중세적인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교회의 개교회주의는 교회론의 본질을 위협하고 있다. 개교회주의란 교회의 인적 물적 사용을 개교회 유지와 확장에 최우선권을 부여하는 태도와 의식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라는 교회의 존재론적 근거를 부정한다. 그리고 선교적 목적을 상실하게 하며, 교회분열을 야기한다. 한국교회가 교회일치와 연합운동에 소극적인 이유도 바로 개교회주의라는 종교적 병리현상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교권의 타락과 정치지향성이다.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는 주님의 비판은 각종 교회의 치리회 안에서 일어나는 자리싸움과 이권다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권구조 타락의 특징은 청년과 여성과 평신도들의 참여를 배제하는 폐쇄성에서도 비롯된다.


외부비판을 받으려 하지 않으면서 자체 정화능력을 상실한 교권은 진정 개혁의 대상이 된다. 한국교권의 특징은 정치지향성이 남다르게 두드러진다. 보수적 교권은 보수적 정치권력과 밀접해 있고, 진보적 교권은 여당과 가깝다. 교회는 분열되어 가이사의 은총을 기대하고 있다.


셋째, 신학교육의 상업화이다. 모든 종교부패의 단상은 성직자 수의 증가와 질적 저하이다. 모두가 눈앞의 위기를 알면서도 눈앞의 이해관계가 브레이크를 망가뜨려 버렸다. 우상숭배자들은 타락하더라도 종교행위를 통해 축복을 기대한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하나님은 타락한 백성의 예배를 받지 않고 자기 백성이라도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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