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의 그 은혜를 받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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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의 그 은혜를 받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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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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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엽목사<기독교정화운동대표>


지금 한국교회나 교계 여러 단체들은 1907년의 평양 대부흥의 재현을 위해서 애쓰며 계획과 실행 방안들을 짜고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인 줄 믿는다.

개교회나 교계 혹은 기독교 여러 단체들이 건전한 성령운동과 은혜 운동들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셨던가?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는 말씀을 하지 않아도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한국 교회에 아낌없이 은혜를 부어 주셨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목마른 이유는 무엇인가? 국외에서 많은 능력의 종들을 초청하여 은혜집회를 하지만 다음 날이면 은혜는 온데 간데 없고 하나의 무의미한 이벤트로 마감되고 권태의 상태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비감하게 한번 따져보자. 진정 우리가 외국의 능력있는 종들의 폭포수 같은 은혜의 설교를 듣는 것이 진정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품어 새기고 영혼속에 예수의 인격을 이루려는 것이었던가?

아니면 많은 대중앞에 과시하며 세계적 인물처럼 행세 하려는 심리는 없었는지.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뛰겠지만 우리 속에 외국것이면 분뇨라도 숭배코자 하는 마음이 있는 이상 이런 마음들은 지울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위대함, 과시욕, 숭앙받는 우상심리, 세계성, 우월감, 영웅주의 등 이런것들이 우굴거리고 있지 않은가?

이런 곳에 어떻게 저 대중 앞에서 간음하고 교회 헌금을 도적질했노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엎드려 통곡을 했던 길선주나 김익두 목사 같은 종들이 받은 그 순수한 성령의 불이 내려 올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의 종들은 언제부터인가 돈의 노예가 되어있다. 언젠가 필자교회에서 능력있는 종의 능력 집회를 한적이 있었다. 교인들은 쓰러지고 귀신이 발동하며 나가고 통곡하며 자복하고 큰 은혜가 있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는 날 강사가 몇 사람에게 가더니 100만원씩 헌금을 작정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게로 오더니 두 사람 몫은 목사님이 갖고 100만원은 자기를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사례금도 서운치 않게 주었는데도! 내 속으로 나오는 말이 ‘돈에 아주 환장을 했구나!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부흥사라는 자의 눈에는 돈 뿐이구나’하고 스스로 탄식을 하고 한마디로 거절하고 그 헌금은 하나님께 작정한 것이니 하나님의 전 강단에 올리라고 그 교인에게 가르쳤다.

그 외에도 지금 한국 교회는 말씀 지키는 신앙풍토가 망가져 있다고 보아 마땅하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청장년 까지라도 교회는 요새 짝을 찾는 장소가 되어 있다.

겉으로는 신사 숙녀지만 속으로는 음흉한 마음으로 서로 눈을 주고 받으며 휴대폰으로 문자로 연락을 하며 문제는 넘지 못할 산을 넘어 서기도 한다. 목사님들이 못본척 하는 사이에 독 버섯 같은 죄악들은 날개를 달고 예수와 하나님을 비웃듯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골방으로 들어가서 이 세대를 아파하며 몸부림을 치고 통곡을 하고 세대의 고난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지 않는 이상 평양의 부흥은 재현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외면 하고 계실 것 같기 때문이다.

주일날마다 목사들은 교인들이 좋아하는 고사덕담이나 소개하고 소크라테스나 헤겔 같은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전개하고 낙관적 향락주의를 정당화 하는 식의 설교를 지양하지 않는 이상 두번 다시 평양의 제2의 부흥은 기대 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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