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헌금설교,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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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헌금설교,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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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9.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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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 목사<강남교회>


교회를 떠난 사람 중에서 의외로 헌금 때문에 부담이 되어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핑계일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무시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신앙을 빙자하여 무리하게 헌금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


실제로 당시 종교 및 사회 상황을 기록한 미드라쉬에 의하면 지도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적은 예물을 무시하며 멸시하는 말들을 쉽게 자행했던 기록들이 있다. 이렇게 멸시하며 무시하니까, 두 렙돈을 낸 과부는 이것마저 드리고 나면 굶어야 하는 절대 결핍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드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종교지도자들에 대해 고발하는 것이다. 즉, 신앙이라는 미명 하에 반강제적이고 억압적인 헌금강요를 유도하는 종교적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고발은 아닌가?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헌금강요가 종종 있다. 이 말은 축복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반대로 들으면 저주하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다. 종교가 타락하면 언제나 인간의 죄성과 탐욕 때문에 종교적 열심이 자기 치장으로 쓰일 때가 많고, 자기 뱃속을 채우고자 하는 의도로 과도한 헌신과 열심을 요구할 때도 있으며,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탐욕 때문에 과장된 신앙적인 열심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면 교회는 헌금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헌금(연보)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후 8:1~5). 그러나 바울은 그동안 고린도교회에 이런 말씀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떠난 후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준엄히 책망하는 고린도전서를 써 보낸 후, 디도 편에 되돌아온 편지에 고린도교회의 영적인 상태가 놀랍게 변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이 말씀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후에 헌금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영적인 이해가 깊지 않을 때는 일반적으로 헌금 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복의 유무가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주는 종교가 아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이런 저차원적인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의 요소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시급히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에 강단이 먼저 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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