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때를 분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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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때를 분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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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2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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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목사<의왕중앙교회>

 

노아 이후에 아브라함을 보자. 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권에 있는 갈대아 지방의 우르에 살던 사람이다.


창세기 11:26에 처음 아브람이 등장한다. 데라가 70세에 아브람을 낳았다고 기록한다. 학자들은 열왕기상 6:1절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아브람의 출생 연대를 BC 2166년으로 역산해 낸다.

아브람은 그의 형제 하란의 아들 조카 롯과 함께 하란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그곳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고, 아브람의 주도로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이르게 된다.

하란을 떠날 때의 아브람의 나이가 75세였다. 아브람은 그때까지 무자(無子)하였고. 10년이 지난 85세 때에 아내 사라의 권유에 따라 인간의 방법으로 사람의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인간의 조급함이고 인간의 한계 안에서 하나님을 보려는 어리석음의 결과이다. 그때는 아브람이 아들을 얻을 때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은 아브라함의 생전뿐만이 아니라 작금에 이르기까지 고통 바로 그것이 되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잊으신 듯이 10년의 세월을 무심히 흘려보내어 어느덧 아브라함의 나이는 85세의 고령이 되었다. 그의 조상들의 나이에 비하면 아직은 젊은 나이였지만 결코 아이를 가지기에 여유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자신의 나이를 의식한 아브람과 사라는 우리가 어리석어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책임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갸우뚱하며 생각했을 법하다.

나름대로는 하나님의 속내를 이제야 알아차린 듯 무릎을 치고 실천에 옮긴 것이 자신의 몸종 애굽여인 하갈의 몸에서 소생을 얻는 것 이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로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성경을 보라. 창11:31에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족장이 누구인가?. 아브라함이 아닌 그의 아비 데라이다. 그는 가나안으로 가고자 하여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데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데라를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가나안에 이거 도중 하란에 머무르게 하셨고, 그곳에서 그 아비 데라는 죽었다. 하나님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받은 이는 데라가 아닌 아브람이었다.


창세기 13:16에서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셔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손의 번성함과 창대함을 약속하셨다. 그리고도 16장에 이르기까지 아브람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으셨다. 비로소 그의 86세가 되어서야 하갈을 통해서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얻을 수 있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었다.

아브람에게 있어서는 만시지탄의 일이었을지라도,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준비하시고 역사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것은 불신앙이고, 하나님의 계획과 그 섭리에 대한 도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라의 몸을 통해 이삭의 때를 예비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참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도전한다. 그 결과는 참으로 혹독하다. 하나님의 때는 느리고 불확실한 것 이 아니라 가장 빠르고 확실하다. 다만 우리가 느리다고 느끼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어설프게 일어서지 마라. 진실로 우리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면,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로 믿는다는 고백이 진실하다면, 나의 날이 다하였음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조급해 하지마라.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고자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나의 불가능의 때를 기다리시는 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 주님 앞에서 항복하지 않았다면 아직 주님의 때는 아니다.

주님의 때를 분별하여 붙잡으라. 반응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애타지 말자.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을 즐겨야 한다. 아버지의 때를 위해 준비된 자에게는 결코 때가 멀리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시고, 예비 된 때에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때가 가장 확실하고 가장 완벽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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