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왜곡된 인간의 욕망이자 심판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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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왜곡된 인간의 욕망이자 심판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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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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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의 동성애 어떻게 볼 것인가?

추태화교수<안양대>


사회가 흔들거린다. 마치 폭풍 몰아치는 파도 한 가운데 나선 것처럼 가치관이 출렁거린다. 도처에서 암약하는 포스트모던 게릴라들에 의해 세계는 몸살을 앓는다. 사회도 교계도 마찬가지다.

제3 밀레니엄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제 그 신호탄이 쏘아진 것인가.

최근 우리 사회는 다시 없는 성폭력, 성추행 사건으로 경악했다. 인간의 본성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성관념이 쇄약해지고 상실되더니 급기야 왜곡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성은 인간을 보존하고 인간답게 고양시키는 소중한 도구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불어온 성관념 해체 사상은 결국 폭력과 살인 등의 엽기적인 방법으로 인간에게 보복하고 있다. 여기 우리가 경계해야 할 성관념은 또 하나있다. 동성애가 바로 그것이다.

퀴어문화 옹호자들은 동성애도 사랑의 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동성애 당사자들은 자신의 진지한 결정이요 선택이라고 말한다. 인권론자들은 동성간의 사랑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는 관용(Tolerance)의 이름으로 동성애에 자비를 베풀라고 거들기도 한다. 동성애 편견이 동성애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론의 근거와 언로를 차단하려 한다. 현재 동성애를 두고 벌어지는 현상이다. 문화도 여기에 한몫 거들어 동성애 코드를 탑재한다.

최근 영화만 해도 ‘메종 드 히미코’ ‘왕의 남자’ ‘브로우크백 마운틴’ 등이 상영되어 이 분야에 대한 관용어린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이제 판도라의 상자를 그만 닫아야 할 때이다. 인간의 본성은 깊은 내면에 보관하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면이 있다.

언제까지 무책임하게 폭로하고 실험만을 자행할 것인가. 뜻하지 않은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해 인류를 위협하는 것이 인간의 왜곡된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왜 잊으려 하는가. 그리하여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인가.

언제까지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경고하신 내용을 하와의 방식대로 “죽을까 하노라”로 경감시킬 것인가. 동성애는 사랑의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왜곡되고 타락된 양식이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경고가 그것이다(롬 1:26,27). 창조주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돌아오길 요청하고 계시다. 동성애를 조장하고 미혹하는 행위는 더 이상 묵과되어서는 안된다.

어쩌면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동성애 자체가 심판의 징조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창조의 질서와 지혜는 역리(逆理)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인간이 자행하는 역리의 한 현상이다. 그 결과는 인간에게 참담할 뿐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다면 동성애자는 하나님의 실패작이요 창조는 실패라고 항변하는 이들에게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한다. 죄로 인해 왜곡된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사악한 것을 가능케 하는지를.

동성애에 관한 몇 가지 소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나는 동성애자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동성애를 확산시키는 이 시대의 문화를 변혁시키는 일이다. 두 경우 다 사랑의 힘으로 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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