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성시화 열기 불신자 ‘경계심’만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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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성시화 열기 불신자 ‘경계심’만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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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2.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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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화운동’ 어떻게 보십니까?

권혁률 팀장<기독교방송 보도국 교계뉴스>
 
 

그동안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돼온 성시화운동이 서울에 본격 상륙했다. 15일 열린 성시화운동 시무예배에서 교계 지도자들은 서울 성시화운동을 통해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가 넘치는 살기좋은 도시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품격이 높고 복음화율이 높은 도시로 만드는데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서울이 살기좋고 복음이 충만한 도시로 변화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서울에 사는 기독교인으로서 무엇에 비할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성시화운동’과 ‘봉헌’이라는 말에 대해 필자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성시화운동이 ‘서울 봉헌’으로 연계되는 구상에 대한 우려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 2004년 5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청년대학생 연합예배에 참석했다가 야기된 ‘서울 봉헌서 낭독’으로 인한 파문을 많은 이들이 아직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과거를 기억하는 교계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성시화운동을 대대적으로 선포하는 것은 자칫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면서 신중한 처신을 요구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같은 우려를 서울성시화운동측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서울성시화운동 봉헌예배’를 시무예배로 변경한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높이 평가할만한 열린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봉헌’이라는 말이 남발되는 듯한 현실에 대해서는 꼭 한번 지적하고 싶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는 그 제물이 순수하고 온전해야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박한 믿음이다.

구체적 사례로, 성전을 봉헌하는 일은 건축부채가 모두 청산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고, 그 이전에는 비록 공사를 마쳐 예배당으로 사용할지라도 입당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봉헌예배를 드리지는 않는 것이 교계의 상식인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고자 한다면, 서울의 모든 시민이 100% 복음화 되어야할 것이며, 서울에서 범죄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형제자매처럼 화목하게 지내는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나야만 할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보다 근본적으로 ‘성시화운동’이라는 말 자체도 한번 재검토해볼 수 없을까? 필자는 종교개혁자 칼빈이 제네바를 거룩한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1530년대나, 우리나라에서 성시화운동이 시작된 1970년대와 지금의 시대상황은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한마디로 기독교가 지배적 종교도 아니고, 기독교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많이 사라진 대신 오히려 타종교와 불신자들의 경계심으로 인해 조심스럽게 처신해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지혜롭게 복음을 확장하기위해서는 교계 내부적으로 신앙고백적, 선교적 차원에서 ‘성시화운동’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더라도 공개적 실천차원에서는 차라리 ‘깨끗한 서울 만들기 운동’이나 ‘범죄없는 서울 만들기운동’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비종교적 실천을 통해 서울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치게 만든다면 그것이 바로 거룩한 서울을 만드는 길이 아닐까? 그같은 바탕이 풍성해져야 서울의 복음화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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