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 거부 아닌 ‘종교적 병역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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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거부 아닌 ‘종교적 병역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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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1.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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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성진 목사<한국기독교개혁운동 대표>


신년을 앞둔 지난 2005년 12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 발표문 중에는 그간 논란이 있어온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다는 안이 들어있다.


권고안 이후,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흔히 국방, 근로, 교육, 납세 의무를 ‘국민의 4대 임무’라고 부른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이면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신념’으로 인해, ‘국방의 의무’를 거부하는 이들이 존재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이 논의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 신도들이다. 이들은 수 십년간 징집 또는 집총을 거부하여 항명죄로 처벌받아 오고 있다.


그러나 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오랜 변론으로 마침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까지 이끌어 내는 성과(?)를 이루어 낸듯하다. 이들에게 ‘국민의 의무’도 수행하지 않으면서, 국민으로서의 ‘특권’과 ‘혜택’만 누리려 한다는 비난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논쟁 이면에 존재하는 문제는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


이들이 과연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에 흐르는 ‘평화’라는 대의에 기반하여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종교 모임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교리를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싶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월 6일 서울 마포 경찰서는 군입대를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안 모(20) 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의하면, 안씨는 지난해 10월 충북지방병무청으로부터 지난해 11월 22일까지 춘천 102보충대로 입영하라는 통지서를 받았으나 입영을 거부한 혐의다. 안씨는 경찰에서 “성서에 ‘전쟁을 연습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어 이에 대한 신념으로 군대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진술했다.     


흔히 ‘양심적 병역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란 어떤 상황에서도 인명 살상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순수한 평화주의적 태도라는 광의의 뜻과 흔히 무장 행동(armed action)과 이를 수행하는 군사 행동 또는 군복무에 대한 반대라는 협의의 뜻이 혼재한다. 행동의 결과만 보자면, ‘안씨’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안씨’의 행동 동기는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정의에는 부합되지 않는 것이며, 오히려 ‘자신의 종교적 교리’에 따른 결정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한 종교의 특정한 입장’과 인류가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양심의 문제’ 사이에는 현저한 이해의 갭이 존재한다. ‘병역 거부’라는 분명히 보이는 범법 행위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반영한다. ‘특정 종교의 신념 및 교리 체계’에 따른 ‘병역 거부’에 ‘양심적’이라는 수사가 붙자마자, 이 종교의 특정 입장과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은 마치 ‘양심’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붙고 만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조국과 가정을 위하여, 국방의 의무를 행한 모든 사람은 자동적으로 ‘비양심적인 군복무’를 행한 것이 된다. 소수의 ‘교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양심’이 의심받을 수는 없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은 ‘종교적 병역 거부’라는 말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종교적 이유’ 또는 ‘특정 교리에 따른 병역 거부자’를 구제하기 위한 논의를 전개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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