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부흥운동을 교회성장으로 이용 ‘심각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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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부흥운동을 교회성장으로 이용 ‘심각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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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2.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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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각성운동으로 본 회개운동의 올바른 방향?


김영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한국 교회가 윤리적인 취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교회관과 무관하지 않다. 교회관은 목회와 교회 정치, 사회 및 문화 전반에 대한 자세와 세계관에도 반영된다.

신령주의자는 현실의 불완전한 교회를 정죄하면서 ‘보이지 않는 교회’, 즉 ‘신앙인들만의 교회’를 추구하는 반면에,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강조하는 개혁주의자는 ‘보이지 않는 교회’를 시인하면서 ‘거룩한 교회’를 지향해야 하는 불완전한 현실의 교회를 중요시하며 목회한다.

신령주의는 특별 은총을 강조하고 일반 은총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반면에, 개혁주의는 특별 은총과 함께 일반 은총을 균형 있게 인식하고 강조한다. 신령주의는 죄악으로 가득한 현세와 세속의 역사와 문화를 정죄하는 나머지 반지성적이며 반문화적인 경향을 보이며, 영적인 삶에 치중하여 윤리를 소홀히 하는 반면에, 개혁주의는 그러한 현세와 세속의 역사와 문화가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 아래 있음을 인식하면서 영적인 삶과 함께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고, 역사에 참여하며 현세와 문화의 변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흔히 말하기를 국민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기독신자들이 성경 말씀대로 제대로 산다면, 한국 사회에는 큰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정법을 전제로 한 추론에서 말하는 희망 사항일 뿐이다. 먼저 그것은 대부분의 교회들이 교인수를 부풀려 광고하거나 보고한데서 얻은 과장된 수치이다.

거짓과 속임수와 불신으로 얼룩지고 멍든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이 점부터 부끄럽게 여기며 깊이 반성해야 한다. 선교연구소의 조사나 갤럽 조사에 따르면 실제의 기독교 인구는 700-800만이라고 하니까 아직 전체 국민 인구의 16-18%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에 등록하고 출석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다 확고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했다고 하여 세계관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등록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가시적이며 수로 계산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람직한 삶을 사는 일은 단번에 달성되는 일이거나 수치로 환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를 변혁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재난 지역에 투입되어 구조 작업을 하는 소방원들과 같은 제 삼의 존재는 아니다. 타락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태어나 거기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익히면서 어우러져 함께 살아 왔으며 살고 있는 사회의 일원이다.

한국 교회는 역사에서 마땅히 회개해야 할 일을 얼버무려 지나쳐 버림으로써 회개에 대한 인색함을 노출했다. 그리고 교회 분열로 인하여 교단들이 종교적인 독선에 빠져 서로 싸우고 경쟁하면서 상식의 결여를 드러내었다.

교회 성장학이 도입되는 바람에 교회들이 더욱 경쟁적으로 저마다 대교회가 되려고 하다가 기업화되었다. 교회 성장학과 더불어 유입된, 은사를 추구하는 소위 성령 운동은 회개 운동과는 거리가 먼 기복 신앙을 부추겨 한국 교회를 더더욱 윤리가 결여된 교회로 만들었다.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열광적인 종교 제일주의에서 그리고 독선적인 분리주의에서 눈을 떠 상식을 되찾아야 하며 교회의 연합을 도모해야 하고 윤리와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성화의 삶은 윤리적인 삶을 포괄한다. 윤리적인 삶이 곧 성화의 삶은 아니지만 윤리적이 삶이 없는 성화의 삶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들려오는 비판의 소리도 들어야 하며 교회 안에서 발하는 자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반성하고 회개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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