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인애와 공평’의 정치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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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애와 공평’의 정치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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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2.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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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청년 정치참여 바람직한가?

백종국 교수<경상대 정치행정학부>


그리스도인의 소명인 복음전파에는 실천적 차원이 있는 데 우리는 이를 대체로 “사회선교”라고 부르고 있다. 존 스타트가 정리한 바처럼 사회선교에는 인권, 환경, 남북문제, 핵문제, 노동과 실업, 인종차별, 빈곤, 남녀평등, 낙태, 동성애, 그리고 민주주의의 수립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통일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추가되리라고 본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실천적 부르심이란 이러한 제반 분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 실천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한국의 정치 체제를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체제로 만드는 일에 부르심을 받고 있다. 대다수는 체제를 책임지는 주체인 기독시민으로서, 또 일부는 보다 직접적인 책임을 부여 받은 관료로, 정치가로, 시민운동가로 부르심을 받고 있다.  

우선 복음에는 어떤 정치 강령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복음에서 직접적으로 강령을 끌어내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볼드링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단지 복음에 근거하여 어떤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현상을 지지하거나 비판할 수 있을 뿐이다. 메시아적 비전은 정치적 강령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결코 특정한 주장이나 단체와 동일시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부르심은 항상 “열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부르심이 열려있다는 뜻은 실천의 폭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불의한 폭력에 저항하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약소민족과의 연대를 증진시키며, 정당한 임금의 지급을 지지하고, 부정부패를 반대하고, 제반 재화의 공평한 분배를 실천할 뿐 아니라 정직한 사람이 더 잘 사는 체제를 만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부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사회가 교회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개혁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많은 교회사가들이 지적하는 바처럼 한국 교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수 국민들의 향도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 교회의 다수는 일부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동에 의해 사회와 교회의 개혁을 거부하는 후진적인 세력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복음에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사회 통합의 과제에 있어서 한국 교회는 당연히 긍정적인 공헌을 해야 한다. 화평케하는 자로서의 부르심을 실천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이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때가 왔다.

한국 교회는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을 육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사회선교센타와 사회선교기금을 세워야 한다. 이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나 성서한국, 교회개혁실천연대, 예수사랑변호사회, 누가회, 공의정치실천연대, 기독교사모임, 등 적지 않은 실천조직들이 발달해있으나 각자 산만하게 분산되어 있어서 적지 않은 인적 물적 낭비를 겪고 있다.

특히, 조직활동과 공간과 행정 모두에 있어서 이 단체들의 중복은 심한 편임에 불구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체계는 부재한 상황이다. 이 땅위에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나라를 세우려는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마음껏 토론하며 다양한 교육과 지원을 누릴 수 있는 공간과 재원이 필요하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정치를 원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한국 교회는 그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사회 선교를 위한 투자에는 인색했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어 귀중한 인적 물적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마치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처럼 극히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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