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통곡과 절규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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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통곡과 절규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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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0.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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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성목사의 파키스탄 참사지역 르포<상>



파키스탄의 지진 참사지역인 죽음의 땅 ‘발라코트’지역의 난민 캠프에서 이마에 붕대를 두른 소년 한 명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파룩이며 나이는 열살이라고 했다. 소년은 유엔난민기구(UNHCR)와 유엔아동기구(UNICEF)가 설치한 210개 천막 가운데 한 채에서 부모님과 어린 동생 3명 등 여섯 식구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파룩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낯설음과 수줍음에 한참 머뭇거리던 소년은 또랑또랑한 소리로 지진 참사 당시 집이 무너지는 상황을 설명했다.

이마에 두른 붕대를 바라보며 어떻게 머리를 다쳤는지를 묻자 소년은 서슴없이 팔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벌떡 일어서 바지를 벗어 내리면서 허벅지의 상처를 보여 주었다. 뒤로 돌아서더니 등을 걷어 올렸다. 거기에는 이미 아물어가는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두 살배기 동생은 집이 무너질 때 깔려 죽었다고 말했다.


“먹을 것도 물도 없어요”

소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의 부모는 울다가 지쳤는지 아들의 울먹이는 목소리에도 표정이 없다. 소년은 하루 종일 걸어서 난민캠프에 왔다고 말했다. 몇 가지 더 묻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묻자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던 소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집도 없어졌고 먹을 것도, 물도 없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은 없어진 동생 때문에 울고 있어요. 저도 동생이 보고 싶어요.”

2005년 10월 8일 오전 9시경 파키스탄 만세라 지역의 덜리자블에 사는 굴람 잔(30)씨는 함께 일하던 부인 딜라 잔(28)씨와 함께 땅을 뒤흔드는 충격 속에서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벽돌집은 폭격을 맞은 듯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고 죽음의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미친 듯이 벽돌더미를 파헤쳤을 때 사랑하는 아들 디프 잔(3)의 주검을 안게 되었다. 통곡과 오열도 잠시 또다시 옆쪽 벽돌더미 여기저기를 파헤쳤을 때 어머니 마리암(56)의 시신을 들어내게 됐다.

벽돌에 짓눌린 딸의 다리

이제 남은 건 생후 12개월 된 딸 라빌라였다. 안방 위치의 벽돌을 들어내자 라빌라의 파랗게 변한 얼굴이 드러났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딸의 발을 짓누르는 벽돌 위에 서있던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정신없이 벽돌을 들어 내고 딸을 품에 안고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엄마 딜라 잔의 울부짖는 통곡 속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딸의 숨소리와 꺼질 듯이 희미하게 들리는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딸이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부인의 절규가 귀를 찢었다.

“여보! 라빌라의 다리를 좀 봐요?” 두 다리가 골절되어 꺾인 채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하던 굴람 잔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처갓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이는 거의 모든 집이 무너져 있었다. 도착한 처갓집의 상황도 다를 바 없었고 장모는 발목을 다쳐 망연자실한 채 마당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장모에게 아들과 어머니의 소식을 전하면서 함께 통곡하고 말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가난한 외딴 마을이기에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무너진 집 부엌자리에서 먹을거리를 찾아낸 뒤 거적으로 천막을 치고 딸과 장모를 뉘였다. 굴람 잔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열흘만에 구조대가 마을에 들어와 부상자들을 이송했다. 생후 12개월 된 라빌라는 임시로 마련된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두 다리는 물론 가슴까지 깁스로 고정시켰다. 아빌라의 가족 4명은 찬바람이 들이치는 천막에서 침상 두 개에 웅크린 채 지내고 있다.

이번 지진참사로 평화롭던 마을인 덜리자불에 살던 100여 세대 4000여 명 가운데 1500여 명이 사망하였고 모든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어느 누가 이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줄 수 있을까?”

김해성 목사/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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