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와 부흥사라는 말에 대한 소회(所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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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회와 부흥사라는 말에 대한 소회(所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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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0.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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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용어 바로 쓰기173

김석한교수<천안대신대원 실천신학>   


교회가 흔히 ‘부흥’(부흥회)과 ‘부흥사’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 ‘부흥’이라는 말의 개념은 ‘쇠잔한 것을 다시 일어나게 함’, ‘정신적 물질적인 것을 회복하거나 헌 것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성경에는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합 3:2)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부흥회’라는 말은 ‘개혁교회에서 교인들의 믿음 성숙과 교회 성장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뜻하는 말인데, 1907년 길선주목사가 인도한 평양 장대원교회의 집회는 영적 삶을 일깨워 신앙교육을 진작시켰고 교인들의 성경 연구와 깨달음을 실천하며 기도하는 신앙의 틀을 형성시킨 역사적 계기가 되어 교회의 질과 양의 성장을 가져왔다.

특히 한국교회의 부흥의 초석이 됐던 것은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가 시작한 성경공부를 위한 집회가 있었는데 이를 초기에는 사경반(査經班, Bible class)이라고 해 4복음서를 중심한 예수님의 생애, 바울서신, 교리문답,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 등을 기본 교과로 한 공부가 선교지역마다 일어나, 전국 8천 개의 사경반이 운영되던 중 ‘사경회’라는 특별 집회 형식으로 발전하여 한국교회 부흥의 토대를 이루게 됐다.

이렇게 불붙게 된 부흥은 많은 성과를 가져왔으나 최근 20여 년 간의 교회 부흥운동의 실태는 한마디로 전형을 잃어버린 집회로 변질돼 이에 몇가지 소회(所懷)를 밝힌다.

첫째, 부흥회라는 명칭을 구분해 써야 한다. 한번도 흥성한 전력(前歷)이 없는 교회가 성장을 목적한 특별 집회를 ‘부흥회’로 집회 명칭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 둘째, 오늘날 부흥 집회의 실상은 기복적인 충동심을 자극하는 종교적 감상주의에 빠져 부흥회의 본래의 모습을 잃고 은사 중심의 기복적인 설교로 약하고 병든 심령 치유보다는 물질 축복과 헌금 강조를 일삼고 강사의 인기 관리를 위해 온갖 기교를 다해 청중 동원에 급급하여 복음이 빠져버린 부흥 집회는 탈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부흥집회 인도자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신학적 근거와 사상을 깊이 터득하고 성경 본문의 연구를 통한 깊은 이해와 기도의 축적과 밝은 영성을 가지고 성령님의 강한 능력에 사로 잡혀 설교와 기도에 감화력을 가져야 한다. 넷째, 인도자는 분명한 집회의 주제 의식과 목표를 가지고 영적인 삶에 변화와 갱신을 가지도록 진리를 말하되 본문과 제목과 표현이 각각 다르게 논리적 체계도 없이 즉흥적인 종교 교양에 불과한 무분별한 말을 쏟아내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부흥사’라는 말의 부적절함을 갱신할 필요가 있다. 부흥사는 기술적 기능사와 같이 완성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기능적 특허인이 아니며 약한 교회를 부흥사가 반드시 부흥이 되게 하는 영적 기능사가 아니므로 부흥사가 아닌 부흥회 또는 특별 집회, 사경회 등의 ‘인도자’ 또는 ‘강사’로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부조리로 일관된 부흥회는 이제 ‘사경회’로 돌아가서 성경을 배우며 기도하다가 성령님의 능력 받아 변화되는 초대 교회의 체험을 재현하는 특별집회로 개혁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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