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 가도 인간 존엄성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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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가도 인간 존엄성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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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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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복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일수 교수<고대법대 / 기윤실 공동대표>


인간복제금지규정(제11조)과 이종간의 착상 등 금지(제12조)는 선진국의 입법례와 비교해서도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생명윤리법이 이 부문만으로도 그 존재 의의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문제는 인공수정 배아와 관련된 생명윤리법 제3장 제2절 이하의 몇몇 조항들이다.

우선 누구든지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해서는 안된다(제13조 제1항). 그리고 인공 수태시술을 위해 배아를 생성하고자 하는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지정받아야 한다(제14조 제1항). 그런데 특정 부부를 위한 임신을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할 경우 어느 범위의 수효까지 가능한지에 관한 규정이 없다.

이러한 입법의 공백상태와 현재까지의 무모한 의료관행을 고려할 때, 잉여 배아생산을 위한 위작된 임신 목적의 배아 생성을 막을 길이 없다. 그리고 잉여 배아를 통한 실험과 조작, 타처 공급 및 해외수출이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배아생성의료기관은 배아 보존기간 5년이 도래한 배아는 연구 목적으로(제17조) 이용하도록 문호가 열려있다.

배아의 보존기간이 경과한 잔여 배아도 발생학적으로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 체외에서 불임 치료법 및 피임기술 개발, 근이영양증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희귀·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 등에 이용할 수 있다(제17조 제1호, 제2호). 그 밖에도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이 정하는 연구에도 잔여 배아의 이용이 가능하다(제17조 제3호).

이상의 규정은 잔여 배아와 체세포 복제 배아를 희귀·난치병 치료 목적으로 활용·처분할 수 있고, 생성할 수 있는 준거틀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배아복제와 잔여 배아의 연구목적 활용을 법적으로 허용한 한두 개 나라의 대열에 들어섰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아일랜드에서는 배아연구 자체가 금지된다. 인공수정을 통해 생겨난 잉여 배아 조차도 연구 목적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어차피 폐기될 잉여 배아 또는 잔여 배아를 값진 연구를 위해 제공하는 것은 공리주의를 떠나서도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관과 일치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오로지 성체줄기세포에 집중하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이것이 배아줄기세포를 채취하기 위해 배아를 폐기물로 처분하게 하는 생명윤리법의 조치보다 윤리적 갈등을 덜 낳기 때문이다.

더디 가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도를 우선해야 한다. 생명윤리와 생명법의 기본원칙에 따른다면 인위적인 선별에 따라 등급화 된 인간생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연구목적을 위한 배아생성의 일반적 금지운동이 일고 있는 때에, 우리나라가 서둘러 법적으로 그 문호를 열고나선 것은 정부의 용렬함이 아니라면 입법자의 생명윤리의식의 부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말 그대로 생명 가치의 보호를 극대화하는 윤리적·법적 안전장치가 돼야 한다.

또한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의 새로운 진보를, 전통적인 생명 가치와 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신중하게 모색하는 실천이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소위 ‘지평의 융합’을 함께 형성하고, 그리하여 ‘조작할 수 있는 윤리’ 보다 ‘금욕의 윤리, 포기의 윤리, 자아절제의 윤리’를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리라고 본다. 그래야만 현세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대해서도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자기 책임을 다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명윤리법은 그 발효를 맞이하기도 전에 과학기술 발달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 장치로 벌써 재편돼야 할 처지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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