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이 말하는 ‘신학적 의미’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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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이 말하는 ‘신학적 의미’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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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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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아버지 칭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2)



최영실 교수<성공회대학교>


주기도문의 ‘당신’(σου)을 ‘아버지’로 바꾼 것에 대해 여성들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한기총·교회협 특위’는 몇 분의 국어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기도에서는 하나님께 ‘당신’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우리말 어법에서 ‘당신’은 2인칭의 존댓말이기는 하지만 그 높임의 정도는 아주 낮으며, ‘하오’체 정도에서 쓰이는 말이며, 이 하오체는 부부나 친구, 또는 손아래 사람이지만 격식을 치러야 할 때 쓰는 말투거나, 두 사람 간에 시비가 붙었을 때도 사용하는 말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존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에게 하오체에 해당하는 2인칭 대명사 ‘당신’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에서 사용된 ‘당신’ 칭호는 우리말 번역에서는 전혀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절대 하나님을 ‘당신’으로 불러서는 안되는가? 그러나 사실 기독교 시인들은 그들의 시에서 하나님을 ‘당신’으로 호칭하고 있고, 구약의 시편의 경우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당신’으로 호칭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들에서 현대적 언어 감각을 가진 젊은이들은 이미 자연스럽게 기도할 때 하나님을 ‘당신’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의 젊은이들을 위한 현대 언어로 주기도문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 남성 신학자인 정훈택은 주기도문에 대한 자신의 번역 안에서 이미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칭호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해 번역하고 있다.

한편 국어학자들은 우리말 어법에서 ‘당신’이라는 말이 재귀대명사 또는 3인칭 대명사로 쓰이는 경우는 2인칭으로 사용되는 경우와는 달리 극존칭을 뜻한다. 그런데 사실상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른 다음에 사용된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은 재귀 대명사나 3인칭으로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신학적으로 볼 때,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주체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인 3인칭을 재귀하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 당신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기도문에 들어있는 ‘당신의’를 우리말 문법 운운하면서 무조건 생략하거나 ‘아버지’로 바꾸어 놓는 경우, 이것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이 말하는 신학적 의도를 놓치게 된다. 마태에서 예수는 주기도문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위해 중언부언하는 이방인들의 기도와 위선적인 유대인의 기도를 비판한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구하기 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 6:7-9).  바로 이 점에서 예수는 산상설교의 청중들에게 ‘나의 이름’, ‘나의 나라’, ‘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하며, 하나님이신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을 구하라고 요구한다.

예수께서 수난의 길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마 26: 39, 42). 그런데 우리말 번역들은 모두 이 구절에서도 그리스어 원문에 없는 ‘아버지’ 칭호를 삽입해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우리말 번역의 경우 주기도문과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의 기도에 들어있는 ‘아버지’ 칭호는 앞으로 모두 원문에 있는 것처럼 ‘당신’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마태가 강조한 신학적 의도가 잘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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