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하나님’ 공식이 여성 차별 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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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하나님’ 공식이 여성 차별 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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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0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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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아버지 칭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최영실 교수<성공회대학교>


언어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세계관을 형성해 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남성 위주의 성차별적 언어와 표상들은 여성을 비웃고 평가절하하며, 남성 의존적 존재로 만들면서 여성을 은폐시키거나 소외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페미니스트적 성서해석은 성서 안에 들어있는 가부장적이며 성차별적인 문화유산과 표상들, 남성 중심의 성서 번역의 문제를 크게 문제 삼는다.

특히 메리 데일리는 “만일 하나님이 남성이라면 남성이 곧 하나님이라는 등식도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하고 말하면서, 가부장으로서의 하나님 상이 인간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한 그것은 여성을 거세하는 것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우려는 이번에 ‘한기총 교회협 특위’가 새롭게 번역한 ‘사도신경’의 첫 부분에서 그대로 자행되었다. 기존의 사도신경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로 되어 있던 순서는 라틴어 원문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설명 없이 그 순서를 바꾸어 ‘아버지 하나님을 믿으며…’로 바꾸어 놓았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곧 ‘하나님’이 된 것이다. 사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가부장적 이미지는 성차별적인 문제만을 야기 시킨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회사의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국가의 권력자들이 ‘적’에 대한 잔혹행위와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데에도 자주 이용되어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아버지’ 표상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여성 신학자들 중에는 성서 전통 이전의 근동에서는 신이 아버지나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묘사되었음을 밝히면서, 하나님의 여성성을 부각시키려는 사람도 있다. 다른 한편 여성신학자들 중에는 성서 전통 안에서 자식을 낳고 기르며 자비를 행하는 자애로운 어머니, 새끼를 날개 아래 품어 보호하는 ‘암탉’으로 묘사된 본문들 속에서 여성적 모습의 하나님 상을 찾기도 한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의 여성 신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성서가 말하는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단순히 아버지나 어머니와 같은 인격으로만 묘사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한다. 로즈마리 류우터는 하나님을 단순히 우리들의 ‘아버지’나 부모의 표상으로만 사용하는 경우, 자립적이지 못하고 언제나 의존적이며 미숙한 아이로서의 태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우려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서에 들어있는 ‘아버지’ 표상과, 주기도문의 ‘아버지’ 칭호도 모두 완전히 폐기해 버려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아니, 그래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성서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아버지’ 표상이 전체 본문의 맥락에서 편집사적으로 연결되어 신학적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신학자들이 밝힌 것처럼 성서는 분명히 가부장적 시대의 산물이며 남성 저자에 의해 씌어진 것으로, 성서 안에는 2000년 전의 팔레스틴의 가부장적 문화유산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 안에서 여성에게 “떡이 되는” 자료만을 발췌하거나 여성에게 걸림이 되는 것들을 무조건 삭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에 들어있는 ‘아버지’ 표상들과 주기도문의 ‘아버지’ 칭호의 경우에 역사비판학적 성서 연구 방법과 사회사적 연구를 통해 본문에 들어있는 그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 ‘아버지’ 칭호가 오늘의 현실에서 일방적으로 가부장적 아버지 상으로 이해되어 여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용된다면, 그것을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조심스럽게 탈 가부장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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