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교회, 다시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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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교회, 다시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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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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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회복보다 교회 내 장로교 본질의 시스템 회복해야



황규학 목사<에큐메니칼연구소>


광성교회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 50년의 역사를 가진 반석 같은 교회가 타이타닉호처럼 점점 물속에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겉으로 보아도 요새처럼 되어 있어 영원히 버틸 것 같은 교회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러나 역사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쇠망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미 쇠망의 금은 내면적으로 가고 있었지만 광성교인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지 후임 목사의 윤리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다. 김창인 목사만의 실수도 아니었다. 물론 한국 사회가 그렇듯이 일인 리더가 차지하는 영향과 역할이 크기 때문에 리더자의 책임이 크게 부각될 수도 있다. 이는 리더가 이미 비도덕적 사회 스타일에 젖어 정치성과 현실성을 염두에 두는 제도적인 인간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나인홀드 니버가 지적하였듯이, 한 개인이 아무리 신앙적이고 양심적이라도, 한 집단이나 조직사회에 들어가게 되면 그 집단과 단체의 논리에 따라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광성교회를 볼 때, 목사나 성도 개개인들은 영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여러면에 있어서 기성교인으로서 자리가 잡혀있다. 이러한 성향이 있기 때문에 거대한 교회와, 학교, 기도원, 부목사들 교회의 성공적인 성장과 신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은 도덕적 인간이고 양심적이고 영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지만, 교회라는 단체의 정치성과 현실성, 집단이기주의 같은 성향을 뛰어 넘지 못한 것이다. 교회가 거대화되면서 그러한 성향은 더 짙어져 갔을 것이다. 보다 더 비도덕적 교회가 되는 것이다. 조계종의 폭력 싸움은 이미 조직화된 종단이 비도덕적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조직의 생리이다. 교회, 절이라고 해서 너무 성역화하지 말자. 규모가 커지다 보면 세속화, 현실화, 정치화, 집단이기주의화 되는 것은 역사가 증언해 온 것이다.

광성교회는 예배당을 회복하기 전에 먼저 본질적인 장로교 시스템을 회복해야 하며 당회의 본질인 대의정치의 본질을 알아 성도들과 하나님의 의도를 대의할 수 있어야 한다. 광성교회는 아직도 공동의회, 제직회,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미래에 대한 특별한 청사진도 없이 당회원들끼리만 협의하여 일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토크빌의 말대로, 전제적 민주주의, 전제적 대의정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당회의 권위만을 인정한 나머지 성도들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다.

광성교회가 건물을 차지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두번째 문제다. 비도덕적 교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투명하고, 성도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장로교 본질에 충실해야 하고 권위주의 시스템을 버리고 누구나 대화 가능한 수평적인 민주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광성교회의 쇠락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덕적이고 양심적이며 민주적이고 투명한 신앙적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이다. 그 때 광성교회는 다시 일어서며 새롭게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건물의 회복보다 장로교 시스템의 회복이 먼저라는 것이다. 광성교회는 온 기독교인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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