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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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2.03.0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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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장로/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코로나 사태로 주로 집에만 있다가 지난 가을, 모처럼 공기가 맑아 나들이의 유혹을 받았다. 아내와 같이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광덕산을 찾았다. 해발 699m의 이 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숲이 우거진 천안의 명산이다. 예로부터 산이 크고 넉넉하여 ‘덕이 있는(광덕, 廣德)’ 산이라 하였으며 또한,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거나 불길한 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주위의 아름다운 숲길을 호젓하게 걷는 맛이 참 좋았다. 정자가 있는 중간 쯤 올라가서 따끈한 커피를 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악인의 선서’가 눈에 띄어 바짝 가보았다. 읽어볼 만한 글이었다. 

그런데 맨 끝에 ‘노산 이은상 짖고, 후학 김OO 쓰다. (2000. 2. 20)’라고 씌어 있었다. 아뿔싸! ‘시, 소설, 편지, 노래 가사 따위와 같은 글을 쓰다’라는 뜻의 ‘짓다’를 ‘개가 목청으로 소리를 내다’라는 뜻인 ‘짖다’로 쓴 것이다. 20년이 넘게 틀린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왔을 텐데 지금까지 시정이 안 된 게 이상한 일이다. 이는 노산 선생에 대한 큰 결례가 되기도 한다.

내려오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집이 있었다. 마침 출출하던 차에 잘 됐다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어서 오십시요’라고 씌어 있었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서 음식값을 내면서 ‘요’자를 ‘오’자로 고치면 좋겠다고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몇 번 소리 내어 본다. 분명히 ‘요’로 발음이 나는데 왜 ‘오’로 써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국어 선생이라는 것을 밝히고 ‘ㅣ모음 동화 현상’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니 그제서야 웃으면서 고치겠다고 했다.

다음날, ‘산악인의 선서’ 수정 건의의 일로 관계 부서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심드렁하게 응대했다. 그래도 괜찮다. 속히 수정만 되었으면 좋겠다. 국어 선생을 오래하다 보니 일상 언어생활에 자연스레 관심을 많이 갖게 된다. 띄어쓰기, 맞춤법, 발음 등에서 잘못된 것들이 왜 그렇게 많이 발견되는지? 오히려 거기에 둔감해지면 좋으련만.

1994년 대학에 부임 후, 근 6년 동안 틈틈이 교직원들의 기도를 듣거나,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잘못 쓰는 말과 발음들을 적어 보았다. 그 당시 우리 대학에는 기독교학부가 있어서 목사, 교수들이 50여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개인별로 카드를 만들어 정리해 나갔다. 어떤 목사님은 설교 후 바로 자기의 오용 표현을 물어오기도 했다. 카드의 분량이 꽤 되어 이것을 책으로 펴내고 싶었다. 마침 이 일에 관심이 많으셨던 목사님 한 분과 의기가 투합되어 공동저자로 책을 펴내기로 했다. 문법적인 것은 내가, 신학적인 문제는 그 목사님이 맡아 환상의 콤비를 이루면서 만들었다.

이 교재로 지금까지 신학대학, 교단 총회, 노회 교회에서 30여 차례 특강을 해 왔다. 예배 때 쓰는 ‘축복, 준비 찬송, 성가대, 사회자, 당신’ 등은 그 뜻을 알고 잘 써야 하며, ‘아멘’이나 ‘할렐루야’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상례 때 쓰는 ‘명복, 미망인, 영결식, 삼우제’ 등은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하고, 교단 총회 때 흔히 쓰는 ‘흠석사찰, 천서, 헌의, 고퇴, 촬요, 자벽’ 등 어려운 말은 ‘질서위원, 총대 자격심사, 안건 상정, 의사봉, 요약, 의장 지명’ 등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요즈음은 자청하여 주로 제자 목사의 교회를 찾아가 재능 기부로 교회 용어에 대한 강의를 한다. 모두들 경청하며 오용 표현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한다. 학부 3, 4학년이나 신대원에서 한 학기 정도 교회 언어 사용에 대한 강좌가 있었으면 좋겠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놓인 금사과와 같다”(잠 25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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