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의 사도로 부름 받고 있는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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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의 사도로 부름 받고 있는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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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6.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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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목사<기장선교교육원장>


6월이 오면 평화를 생각하게 된다. 왜?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뜻을 지닌 조선(朝鮮) 땅에는 늘 평화가 없었고 지금도 평화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역사가가 헤아려 본 바로는 문자적으로 기록된 역사 기록만을 참고하더라도 조선 땅에서 적어도 100번 이상의 전쟁 있었고 560번의 침략이 외부로부터 자행되었던 것이다. 밤 사이에 항상 불행한 사건들이 발생하곤 했기 때문에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인사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6.25 전쟁도 한 밤중에 일어나 깊은 잠에 빠져있던 우리들은 새벽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립하는 미소(美蘇) 양 진영을 대신하여 한 피를 나눈 동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한 처참한 전쟁이었다는 데 한국전쟁의 아이러니가 있다.

이 아이러니는 우리 시대가 풀어야할 절대 절명의 역사적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 오늘 전 세계를 휘몰아가고 있는 세계화(Globalization)가 6.25전쟁을 통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반도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열강들이 각축하는 현장이 되었고 세계의 평화는 한반도에서 시작되고 완성될 전망이다. 우리 민족은 끊임없이 계속된 오천년 역사의 고난과 해방과 더불어 찾아온 전쟁과 뼈저린 분단의 경험을 통해서 세계의 열강들은 우리들에게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장하는 평화는 완전한 평화가 아니고 반쪽밖에 안 되는 평화이다.

예레미야는 일찍이 반쪽밖에 안 되는 평화의 한계를 꿰뚫어 보았던 예언자였다. “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하나 평강이 없도다”(에 6:14). 한국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평화의 한계를 깨달아 가면서 우리 사회 가운데 평화 이해에 대한 양극화 현상이 노정되고 있다. 필자는 5.18 민주 항쟁에 참여했던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세계 우방들의 힘에 의지하여 평화를 보장받으려는 우리 사회 가운데 합의된 사고가 위협받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한국에 오신다면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의 평화 없음과 평화 없을 미래를 보시면서 탄식하셨던 그 탄식을 다시 반복하실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 23:37-38).

그렇다면 우리들이 갈구하는 진정한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평화(平和)라는 단어는 공평할 평(平)자와 쌀미(米)와 입구(口)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단어가 지니고 있는 뜻은 쌀이 모든 사람의 입에 공평하게 나누어 질 때, 평화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정의(正義)의 실현이 없이 진정한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정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역학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모여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전’의 실현을 일차적인 교회의 선교적 과제로 설정한바 있다. 그 때 채택한 정의와 평화 선언은 세계 질서 가운데 정의의 실현 없이 평화가 불가능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평화는 부정의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평화는 모든 나라들 안에서 정의에 기초를 둔 새로운 국제 질서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각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고 있다. 평화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우리에게 가르친 바와 같이 의(義)의 결과이다. 평화와 정의를 향한 교회일치적인 이해는 모든 곳에 살고 있는 모두를 위한 정의 없이는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결코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국제 질서 가운데 정의를 이루는 길인데 우리들은 엉뚱한 곳에서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한국전쟁의 폐허 가운데서 새롭게 태어난 한국 교회는 세계 질서 가운데 정의의 실현을 위해 기도하고 투쟁함으로 평화 없는 세계 질서 가운데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는 새 시대의 예언자로 부름을 받고 있다. 국제 질서의 살아있는 현장은 한반도이다. 섭리의 역사는 전쟁과 분단의 상처로 얼룩진 세계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한반도 역사의 한가운데서 한국 교회를 세계 평화와 정의의 사도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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