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개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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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개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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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6.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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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주기도문 번역안의 ‘아버지’ 호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이형기 교수<전 장신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381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버지’ 개념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히브리 사람들을 여성답게 측은히 여기시어 출애굽시키셨고, 여성답게 고아와 과부를 따뜻하게 사랑하시는 인자하심을 보여주셨으며, 포로 시기 동안에 이스라엘의 고통에 동참하신 여성다운 구약의 하나님을 최종적으로 계시하시고, 나아가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신 그 분 자신이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죄인과 세리 그리고 여성들에게 여성다운 긍휼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버지 개념에는 여성성이 포함돼 있다고 보여진다.

즉, 구속사적 내러티브를 배경으로 하는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본성을 증언함에 있어서, 이 하나님의 참 본성(본질)이란 단순히 그 당시의 사회문화적 소산으로서의 아버지 개념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하는 말이다. 성경이 사회문화적 소산으로의 언어인 아버지 개념으로 하나님을 표현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아버지 내용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은 문화적인 것으로 표현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구약과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을 경우, 그것은 여성상을 포함하는 아버지로서 결국엔 인간의 보편 개념으로서의 아버지 개념과 어머니 개념 모두를 아우르고, 나아가서 그것을 완성시키며 초월한다고 하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그 의미가 그렇다는 말이요, 예수께서 복음서 내러티브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부르신 것을 우리가 다른 것으로 대치시켜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에큐메니칼 해석에서 우리는 아버지 개념이 단순히 남성과 여성에 대한 보편적 세계의 시대에 따른 경험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대치 불가능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성서적인 내러티브가 이야기하고 있는 본문의 문법에서 발견되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먼저 신앙으로 인식하고, 그 다음에 이를 신앙의 유비에 의해서 설명할 따름이지만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 번역되는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아버지’ 개념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해를 피하고 본래의 뜻을 더 밝히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이 아버지 개념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당신의’라는 우리말 어법이 국어 정서상 문제가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고 여겨진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부름에 있어서 아버지라는 말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결코 부를 수 없고, 아버지로부터 나오시어 아들 안에 거하시다가 시간과 공간의 차원으로 내려오시는 성령에 대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성령은 어디까지나 아들의 성령이요 아버지의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라는 용어를 다른 것으로 대치할 경우, 삼위일체 신론 전체가 해체되는 위험에 떨어질 것이다. 창조는 아버지께, 구속은 아들에게, 그리고 영화롭게 하심은 성령께 돌려지되, 이 각각에 있어서 아버지 두 위격이 참여하는 삼위일체야말로 다른 용어로 대치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명심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그것은 인간의 보편 개념으로서의 부성과 여성성 모두를 포함하면서 그것을 완성시키고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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