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아버지`라는 말 함부로 쓰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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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아버지`라는 말 함부로 쓰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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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5.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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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용어 바로쓰기(159)
 



교인 중에는 자신을 전도한 사람이나 신앙생활에 영향을 끼친 사람, 혹은 담임목사를 ‘영의 아버지’(어머니) 또는 ‘신앙의 아버지’(어머니)등으로 지칭하는 사례를 흔히 보는데 이는 몇 가지 점에서 부적절한 말이다.

첫째, 이런 말은 부성(父性)적 속성과의 관계적 표현이기는 하나 생식(生殖)적 혈족에게 쓸 수 있는 말을 조건적 연고성을 짙게 표현할 양으로 태생적인 관계어로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근본주의적 인식이며 성향적 논리의 표현이기는 하나 신앙원리에 맞지 않는다.

둘째, 성경적인 관점에서 ‘영의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신데 그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요3:3-6, 딛3:5, 벧전1:3) 양자의 영을 주어(롬8:14-16) 영적인 자녀를 삼으사 후사가 되게 하여(롬8:17, 엡3:6) 하늘의 기업을 얻게(히9:15, 벧전1:4)하시는 영원하신 상속자로서(마19:29, 25:34) ‘영의 아버지’시다. 따라서 영이신 하나님(요4:24)으로부터 거듭난 영적 자녀가 육으로 난 자를(요3:6) 영적인 부성의 신분으로 지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

셋째, 육적인 요소를 가진 사람을 ‘영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성질상으로 견주어 표현할 수는 있으나 사람을 ‘영의 아버지’로 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가톨릭교회에서 ‘성체성사’(聖體聖事)나 ‘견진성사’(堅振聖事)를 받는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도울 사람을 대부(代父)나 대모(代母)로 지정하는 제도에서 착안된 것으로 유추되나 성경주의 개혁교회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넷째,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1:10), “나의 자녀들아…”(갈4:19)등의 사도바울의 표현을 근거로 ‘영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말씀의 오해인 것이다. 바울이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영적 아버지’라고 표현한 것은 이방인을 개종케 한 것이 마치 산모가 해산의 고통을 겪으면서 자녀를 낳음과 같았다는 의미로 사도적 애착심을 표현한 것이지 바울 자신의 권리와 위치를 말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부성애의 본능적 속성으로 사랑과 친밀한 관계를 묘사한 수사(修辭)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섯째, 바울이 복음으로 사람을 회심시키고 성장하도록 양육한 부성적인 역할이 신앙적이었기 때문에 ‘영적’, ‘신앙적’이라는 표현은 가능하나 ‘영의 아버지’, ‘신앙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영적’에서 <적;的>은 ‘어떤 사물이 그 상태로 된’,  ‘그런 성질을 띤’ 등의 뜻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 시니라”(마23:9),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다”(고전8:6)고 말함으로써 아버지는 하나님뿐임을 강조하였다. 목회자 자신이 스스로를 영의 아버지라고 강조하거나 교인이 지도자를 그렇게 지칭하는 것은 사이비 집단의 교주를 신성화하기 위해 쓰는 경향과 같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영의 아버지(어머니)’로 지칭하여 하나님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신앙적으로 많은 영향과 덕을 끼친 사람의 지칭은 “영적 은인”이나 “신앙의 은인”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이다. 참 영의 사람은 세상에 속한 말을 하지 않는다(요일4:5).


 


 

김석한교수/천안대대학원 실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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