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간접적 축하, 제대로 된 기독교 반응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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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간접적 축하, 제대로 된 기독교 반응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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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5.1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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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일에 대한 교회의 축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승구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1. 석탄일의 성격에 대한 이해

불교에서 말하는 석탄일(釋誕日)은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불교의 기록에 의해 판단하면 싯다르타는 BC 563년(이를 BC 463으로 보는 설도 있다) 4월 8일(음력) 해뜰 무렵 북인도 카필라 왕(지금의 네팔 지방)의 왕이던 정반왕(淨飯王)인 슈도다나(Suddhodna)와 마야(Maya) 부인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 등지에서는 이전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다른 견해들도 있으니 경(經)과 논(論)에 석가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으나, 자월(子月: 지금의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 8일은 곧 인월(寅月: 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역법에 의하면 2월 8일이므로, 음력 2월 8일이 석탄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또한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결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은 석탄일이 싯다르타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인데, 그 날짜가 정확하지 않으므로 각 국에서 예전부터 정하여 온대로 그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고, 한국에서는 예전부터 음력 4월 8일에 이를 지켜 왔으므로 이 날을 기하여 싯다르타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석탄일에 대한 불자들의 축하에 대한 태도

그러나 사실 불교가 지향하는 바에 의하면 그가 태어난 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싯다르타가 깨달음에 이른 날, 대오각성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 불교의 사상에 더욱 맞을 것이다.

불교의 기록에 의하면, 싯다르타는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깊고 고요한 명상에 들어가 그의 나이 서른다섯 되던 해 12월 8일에 각성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고 하니, 차라리 그 날을 기념하는 것이 그들에게 맞을 것이다. 또는 불기를 그로부터 계산하듯이 싯다르타가 죽어 입멸한 날을 기념하는 것도 나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2월 8일을 그의 입멸날로 기념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자들이 싯다르타의 탄생일을 기념하려고 한다면 그 일을 굳이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종교적 행사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이 못하게 할 수도 없고, 또 못하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3. 석탄일을 기회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도 석탄일에 함께 축하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이런 일을 기회로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헛된 것을 추구하고 있는 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어찌하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제대로 알려야 되겠다는 다짐을 강하게 해야만 한다.

석탄일이나 그 날을 전후로 해서 불자들에게 전도를 하겠다는 생각은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으나 대개는 지혜롭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석탄일 등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이웃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서, 기회를 사서 적당한 때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우리의 평소의 삶에서 기독교적 사랑을 표현하고, 적당한 때에 복음을 전해야

이를 위해서는 평소에 불자들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독교적 사랑을 표현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의 표현을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복음 전파를 위한 준비를 하고, 기회가 주어지는 때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얻고 있는 생명의 길로 사람들을 동참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일에 힘써 가야 한다. 그래야 불교가 힘써서 부처가 되려고 노력하는 그런 것 이상의 것이 이 세상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다투거나 어떤 해결력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그 본래적 목적을 잘 드러나게 할 수 있는 그 사랑의 힘으로 기독교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불자들의 연등 행사 등을 방해하거나 그들의 종교 행사를 무시하는 것이나, 그들의 행사에 직간접적으로 동의하며 찬동하는 축하는 둘 다 제대로 된 기독교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좀더 성숙하게 반응하되,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드러내며,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깊이 느끼면서 이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대답할 것을 온유한 심정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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