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운동의 성서적 방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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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운동의 성서적 방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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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4.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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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호 목사<한시미션 대표>


어느 한 공동체에 위기가 생겼다고 말할 때에는 그 위기가 외부로부터 온 경우와 내부로부터 생겨난 경우, 이렇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물론 복합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껴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위기를 맞았을 때, 어떤 공동체는 끝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허물어지기도 하고, 어떤 공동체는 그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여 더욱 발전하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사의 모형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천년 전, 초대교회에도 크고 작은 위기 상황들이 존재했다. 특별히 스데반 집사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가 옥에 갇히는 등 외부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압과 핍박이 거세어졌던 때에, 이러한 위기는 복음 전파를 매우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제자들로 인해 믿는 자의 수가 날로 더해지고 있었다. 더욱 더 감사한 것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가운데서도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 기쁜 일이 곧 공동체의 또 다른 내부 위기를 불러온다. 그 일은 다름 아니라,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 가운데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행 15:1)”라고 말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는 굉장히 고민스러운 문제였다.

유대인 남자들은 태어난 지 8일이 되면 할례를 받았고, 이 제도는 약 2천년 동안이나 내려온 전통이었다. 그러나 이제 처음 구원의 소식을 듣고 새 삶을 시작해보려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나 정결의식, 유대의 절기 등을 지켜야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조건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일이 결국 이방인의 사도로 헌신했던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간의 변론과 다툼이 되었고, 이는 결국 초대 교회를 양분시킬 정도의 큰 문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것이 바로 우리가 ‘제1차 예루살렘공의회’라고 부르는 사건이다(행 15장). 그런데 이때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한 사람을 주목해 본다. 바로 이 공회의 의장격인 야고보다. 그는 육신적으로는 예수님의 동생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신앙을 고백하여 초기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사도 바울과 여러 장로들이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베드로도 자기 의사를 밝힌 이후에, 마지막으로 야고보가 그 모든 내용을 정리한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행 15:19~20).

그는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기반을 두고 있는 유대의 전통과 이방인들을 새로운 형제로 끌어안는 신선한 시도를 동시에 존중하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옛 선지자들의 말을 인용(행 15:15~18)하는 깊은 성경 지식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할만한 자신의 의견을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이라는 완곡한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의견과 상대 의견을 수평적으로 평가하고 내어 놓되, ‘다만’이라는 표현 방식을 통해 상대에게 뭔가 명분을 주는 멋진 지도자다. 공동체를 분리하지 않고 큰 틀 안에서 안아가는 지도자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화해를 만드신 분이다. 분리보다는 하나 됨을 추구하는 이 멋진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지식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묶으셨던 예수님의 모습과 닮아 있다.

본질적 측면이 훼손되지 않는 한에서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이다. 끝까지 자기 의를 고집하는 사람,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공동체의 분리를 만든다. 우리를 통해 높아지는 것은 오직 예수 이름이면 된다. 복된 이름 예수를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높이기 위한 겸손한 지혜가 수많은 분열과 갈등 속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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