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쫓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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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쫓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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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4.0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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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교수<천안대학교>


옛날 외딴 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무척 심심하고 적적해서 둘이 앉기만 하면 매일같이 이야기를 하고 또 하여 더 이상 주고받을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시루떡 한 자루만 해주면 그 떡을 가지고 마을로 내려가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들어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떡을 해 주었고 할아버지는 떡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마을로 향해 가던 중 한 젊은이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젊은이에게 시루떡을 줄테니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다. 젊은이는 마침 배가 고팠던 참이라 할아버지가 준 시루떡을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쩔쩔매고 있던 젊은이는 황새 한 마리가 논물에 내려앉아 있는 걸 보고 무릎을 탁 치며 ‘이거야!’ 하고 생각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젊은이는 황새가 목을 길게 빼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성큼성큼 걸어가는구나!” 하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는 옳다구나 하고 따라 외웠다. “성큼성큼 걸어가는구나!”

그러자 황새는 그 기다란 목을 기웃기웃하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기웃기웃 살펴보는구나!” 그러자 할아버지는 “기웃기웃 살펴보는구나!” 하고 신이 나서 따라 했다.

그 때 황새가 긴 부리로 논바닥의 우렁이를 콱 찍어 먹는 것을 보고 “옳지! 콱 찍어먹는구나!”라고 말했고 할아버지도 따라 외웠다. 조금 있다 황새는 그곳에서 날아가 버렸다. 날아가는 황새를 보고 젊은이는 “훨훨 날아가는구나!”라고 말했고 할아버지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외웠다.

밤이 되자, 잠자리에 누워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낮에 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구나!”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자 간이 콩알만 해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도둑질을 하려고 들어 온 도둑이었다.

도둑이 성큼성큼 걸어서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도둑은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 기웃기웃하며 살폈다. 그 때 방안에서 “기웃기웃 살펴보는구나!” 하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도둑은 이것 큰일 났다 싶어 부엌으로 들어가 숨었다.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솥에서 팥죽 냄새가 났다. 배가 무척 고팠던 도둑은 팥죽을 손가락으로 쿡 찍었다. 그러자 그때, “옳지! 콱 찍어먹는구나!” 하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도둑은 기겁을 하고 쏜살같이 도망쳐 나왔다. 그 때 또 등 뒤에서 “훨훨 날아가는구나!”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둑은 달아나면서 주인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다정하게 이야기하느라고 도둑이 왔다 간 줄도 까맣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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