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 산상설교(7)
상태바
사복음서 - 산상설교(7)
  • 운영자
  • 승인 2005.03.30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경진의 신약읽기(26)

마태복음의 주제를 한 마디로 말하면 ‘더 나은 의(義)’다. 이 의는 마 5:20에 근거한 것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초월하는 의이다. 사실 마태복음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할 때 여기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란 마태가 속했던 교회 공동체를 위협하는 유대교 회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의보다 더 뛰어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말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특별히 사랑하며 이를 행동에 옮기기를 평소 힘쓰는 사람들인데, 그러한 전문가들보다 더 의로워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이것이 복음의 진리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주님이 실천 불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5:20에서 ‘더 나은 의’를 말씀한 후 이어 나오는 6개의 대립 명제 속에 그 해답이 담겨 있다.

6개의 대립 명제는 일정한 양식을 취하고 있는데, 먼저 “옛 사람에게 말한 바 … 너희가 들었으나”(21, 27, 33, 38절)로 시작하여 구약의 율법을 소개한 후, 이어서 “나는 너희에게 이로노니 …”(22, 28, 32, 34, 39, 44절)라고 시작하면서 그 율법에 대한 주님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즉,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이 대조되어 소개된다. 그러면 과연 이 대조에서 드러난 복음은 무엇인가? 어떻게 율법의 전문가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우리들의 의가 더 나을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은 구약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바르게 해석해 주신 주님의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구약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는 했으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준수가 아니라 단지 외양과 형식에 치우친 위선적인 준수이었다.

그리하여 주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2~3절)라고 말씀하시며, 율법 교사로서의 그들의 권위는 인정하되 실천이 없는 그들의 외식(外飾)을 비판했던 것이다.

이 말씀과 “나는 너희에게 이로노니”로 시작하며 주님이 말씀하신 내용들을 고려할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마음속에 아무리 분노와 시기와 미움이 가득차도 단지 칼로 찔러 죽이지만 않으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킨 것으로 생각하였고, 또한 아무리 마음속에 음욕(淫慾)이 가득차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만 않으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준수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율법 준수의 내면적 동기를 중시했던 주님의 율법 해석에 따르면, 이미 그 마음속에 형제에 대하여 분노가 가득 찼다면 이미 살인한 것이고, 음욕이 가득 찼다면 역시 간음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을 때의 본래의 의미를 주님께서 바르게 해석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이 본래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계명의 형식적 준수에 만족한 나머지, 하나님 나라의 의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