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개방 정책과 미디어 정책이 교회커뮤니케이션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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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개방 정책과 미디어 정책이 교회커뮤니케이션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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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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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과거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경험을 하고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 소련 해체와 서독 중심의 독일 통일은 북한 정권에게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이 중단된 북한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등 세계적 대변혁으로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입장이었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1992년 10월 ‘합작법’과 ‘외국인 기업법’이 제정되고, 1993년 1월에는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이 마련됐다. 제한적이지만 자본주의를 도입하겠다는 뜻이었다.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외자를 유치하고 경제협력을 하기 우해서는 미국,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었다. 1990년대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한다. 핵문제, 미사일문제 등 벼랑 끝 전술은 결국 체면을 차리면서 경제적 이득을 얻고 궁극적으로 미국과 수교, 교류하려는 그들의 독특한 노력이었다. 이런 군사적 외교적 노력을 통해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담판을 짓고 싶어 하는 북한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남한과의 관계 개선이 요청되고 있었다.

그러나 남한 정부를 미 제국주의의 괴뢰 정권으로 규정하면서 그 역사적 정통성을 완전히 부인하는 마당에 남한 정부와의 직접 대화는 모양새 갖추기를 넘어서기 힘든 수준이었다. 반면 남한의 기업인 등 민간인과 단체와는 교류와 협력을 크게 확대해 나갔다. 남한의 종교인들은 이런 면에 있어서 매우 좋은 교류 상태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남한에서 열린 국제스포츠대회, 2003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북한의 대규모 선수, 응원단 파견 등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예측하게 한다. 이 같은 변화의 조짐 속에 종교 교류도 활성화되고 기독교의 경우, 북한에도 2개의 공식 개신교 교회와 1개의 가톨릭교회(성당)이 설립됨으로써 종교정책 변화와 진전에 대해 조심스런 낙관론도 대두되고 있다.

변화의 배경에는 1986년 남북 교회 인사들이 스위스 글리온에서 회합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매년 남북 교회가 평화통일 기도주일(8월15일 직전 주일)을 정해 공동 기도문을 제정, 채택하는 등 남북 교회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2002년도에 방북한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북한 교회 변화를 전망하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고 구 소련의 위성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방체제를 표명하면서 구 동구권에서 제도 교회들이 활성화되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이런 변화가 북한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59세,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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