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잘못을 꾸짖은 조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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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잘못을 꾸짖은 조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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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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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교수<천안대학교>

조언형은 단천 군수요, 강혼은 함경 감사였는데 둘은 죽마고우로 변함이 없었다. 조언형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좋아하여 세상과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전랑에서 집의에 오르는데도 여러 번의 기복이 있었다.

일찍이 강혼이 폐조(폐한 조정, 즉 연산군 시대)에서 하는 짓을 보고 크게 분개한 일이 있는데, 들으니 그가 함경  감사가 되어 단천을 순시하러 온다고 했다. 조언형은 곧 행구(여행할 때 쓰는 기구)를 갖추게 하고 거친 술 한 통을 준비시켰다.

아전이 말했다. “감사께서 가까이 오고 계십니다. 사또께서는 마땅히 나아가시어 공경하는 예로써 맞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조언형은 병을 핑계로 누워 있다가 장차 해가 지려 하매 무관의 옷으로 갈아입고 큰 신을 끌며 한 노복에게 술통을 지워 감사가 머무르는 곳으로 바로 가 “혼이 어디 있는가?” 하고 외쳤다. 강혼이 급히 문을 열고 반가운 빛으로 나오며 “나 여기 있네, 나 여기 있네”라고 했다.

그러자 조언형이 자리에 앉아 “추운데 술 한 잔 하겠는가?” 하고는 먼저 큰 잔으로 따라 마셨는데 안주는 없었다. 강혼도 스스로 따라 마셨다. 서로 석 잔을 마신 뒤 조언형이 말했다.

“지난날에 자네가 한 짓은 개, 돼지만도 못했으니 아무도 자네가 남긴 밥은 먹지 않을 걸세. 젊어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사귈 만하다 했는데 어찌 하찮은 재주로 몸을 함부로 함이 그토록 심했는가? 살아도 죽음만 같지 못했네. 내가 글을 보내 절교할 생각이 오래였으나 차마 옛 정에 그러지 못했네. 다만 한번 만나 꾸짖고 끊으려했는데 오늘 잘 만났네.”

강혼은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조언형은 남명(조식의 호) 선생의 아버지이니, 그 의기의 결렬함이 대개 그 집안의 내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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