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현장에서 부활을 경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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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현장에서 부활을 경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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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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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부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곽창대 목사<서울중앙교회>


예수님의 부활은 그를 믿는 자들의 부활을 보증한다. 고전 15장(부활 장)의 요지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님 안에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과 교통한다, 혹은 예수님과 연합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면 예수님을 믿는 자, 즉 예수님과 연합한 성도도 역시 부활하는 것은 논리적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에 이르렀듯이 우리도 십자가를 통해서만 부활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만이 예수님의 부활에도 참예한다고 말씀한다(롬 6:4~5, 갈 2:20).

중요한 것은 그 부활의 경험이 지금 여기서도 경험된다는 것이다. 아니 경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성도는 주님 재림하실 때 부활한다. 그 부활은 최종의 완전한 부활이다. 그러나 성도는 지금 여기서도 부활을 경험한다. 통상적으로 말해서 지금 부활을 경험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최종의 완전한 부활을 누릴 것이라는 상상은 안하는 것이 좋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3장)에서 그의 한 가지 소원을 피력했다. 그 소원이 가장 크고 고상해서 그 소원을 이루는 데 자신의 생을 완전히 투자하고 있다고 간증한다. 바울의 최고 소원은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었다. 이유는 그가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깊이 깨닫기 위해, 복음을 효과적이고 충실하게 전하기 위해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는 것이 그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했다.

빌 3:10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과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게 이해한 바울은 이해로만 머물고자 하지 않았다. 이해한 것을 경험하고자 했다! 그가 소망했던 궁극적인 경험은 예수님에게 일어난 부활을 자기도 경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부활의 경험을 기대하며 고난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자신도 적극적으로 고난의 현장으로 달려 들어가노라고 고백하면서 그것이 자신이 가야 할 길임을 천명했다. 그 고난의 길에서만 부활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부활 경험 없이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없다. 오늘 여기서 부활을 경험할 때만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살 수 있는 것이다.

금년에도 부활절을 맞으며 한국 교회를 향해 가지는 소망은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부활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먼저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고난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고난이 있다면 무슨 고난인가? 정말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인가? 대의를 위한 고난인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고난인가? 거룩하게 되려는 몸부림 때문에 받는 고난인가? 분열과 갈등으로 산산이 찢겨가고 있는 한국 땅에 희망과 사랑이 꽃피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받는 고난인가? 가득한 추수를 꿈꾸며 지금은 한 알 밀알로 썩어지고자 척박한 땅에 심겨짐으로써 당하는 고난인가? 수동적인 고난에서 적극적인 고난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는가?

주님, 저를 비롯하여 한국 교회 성도들이 고난의 현장으로 앞서 들어가고 계시는 주님을 보도록 영안을 열어주소서! 그 고난의 길 가운데 부활의 언덕이 있음을 보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 고난의 현장을 밟게 하시고 그 고난의 현장에서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소서!


늘 들어왔던 경구는 진리다! ‘No Cross, No C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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