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가는 ‘성숙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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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가는 ‘성숙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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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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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가 가족제도를 해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순임 목사<한국여신학자협의회 사무총장>


호주제가 수년 간의 진통을 끝내고 폐지됐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 제도는 한국 사회가 여성의 인권이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미 10년 전부터 UN으로부터 폐지할 것을 권고받아 오던 터였다.

3월 2일자로 호주제 폐지가 국회에서 통과되고 10여 일이 지났다. 대개는 긍적적이거나 어느 정도 체념한 듯이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성명서가 발표됐다. 가족 공동체를 해체하는 것이라는 논지를 펴고 있었다.

호주제 폐지가 마치 아버지의 존재와 가족의 뿌리를 사라지게 하고, 이기주의를 만연시키며 가족 윤리를 파괴하는 것, 부계 혈통주의를 지향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개인 정보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신분제도 필요

호주제 폐지가 가족 공동체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피력하는 이유로는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호주제 폐지는 헌법에 준하여 명시된 개인 인권의 존엄성을 지키며, 시대적인 흐름에 부응하려는 것으로, 개인의 인권 보호, 양성 평등, 그리고 정보화된 사회에 걸맞게 개인의 신변 보호를 주요 기본 줄기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호주제 폐지를 위해 입안한 주요 골자는 “남성과 가부장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규정하는 호적제도를 대신해 양성 평등을 실현할 수 있고, 개인 정보를 효율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신분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혼인과 가족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 원칙(헌법 제36조)”을 실현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 위에서 마련된 것이므로, 가족관계에 있어서의 문제점들이 개선된 나름대로 이상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어느 부서가 주관하여 시행하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도 이미 여러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서 의견이 수렴되었고, 법무부와 대법원에서 이를 반영하기로 하였으므로 앞으로 이와 관련한 큰 이견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호주제를 성서적으로는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 성서를 읽어가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족보가 기득권을 지닌 남성 중심적인 기록으로 일관됐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존재나 역할이 미약하다고 속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혈연과 가족 넘어 생명 공동체로 나가야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는 예수가 누구의 자손인가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예수를 통해서 의미를 지니게 됐다는 것에 역점을 두어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족보 속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여성을 통해서 사실상 부계 혈통의 사회상을 상대화할 뿐만 아니라, 족보를 통해서 부계 혈통을 따라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이른바 씨없이 잉태됨으로써 가부장제를 넘어선 구원의 새 질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형제 자매의 관계도 가히 혁명적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못박는다(막 3:33~35). 이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가족 공동체의 개념이 아닐 수 없다. 예수는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선, 혈연 가족 개념을 배제한 종말론적인 가족 개념을 도입하셨다.

이러한 성서적 가족 개념에 비추어 볼 때, 호주제 폐지는 우리 사회를 한층 더 성숙시킬 뿐만 아니라, 성서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 확신하며, 혈연을 넘고 가족을 넘어 생명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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