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다섯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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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다섯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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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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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용서의 제물

욥기 42:7~10
찬송: 304장

욥과 그의 재앙을 위로해 주려고 온 친구들과의 논쟁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에게 나타나셔서 욥의 말같이 너희들의 말이 옳지 못하다고 하시며, 욥에게 찾아가 너희를 위해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욥에게 찾아가 용서를 빌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 회개하지만, 사람에게 잘못한 것은 사람에게 찾아가 용서를 빌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욥도 하나님 앞에 잘못을 했지만 욥이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하자(용서의 기도) 하나님께서는 욥을 기쁘게 받으셨다 하셨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져 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서로 온전하지 못한 모습 속에서 서로를 향한 용서가 매일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일곱을 일흔 번씩 용서해주라”고 하시면서 하나의 예시를 들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어떤 주인이 자기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탕감을 해주었는데, 그 사람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옥에 감금하고 빚을 받으려 하자 그 소식을 들은 주인은 탕감해 주었던 빚진 자를 옥졸들(바사니스테스:고문하는 사람)에게 넘겨 버립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 속에서 본인이 고문당하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의미도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들 위한 용서의 제물로 기쁘시게 받으시고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욥처럼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도 기쁘시게 용서의 제물로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

창세기 8:20~22
찬송: 544장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번제를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제사 향기를 맡으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상대적으로 이 사람보다 저 사람이 좀 더 착해 보이고, 상대적으로 이 사람보다 저 사람이 좀 더 온화하게 보일 뿐 하나님이 사람을 보는 기본 관점은 천성 자체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인간의 천성이 악하기에 사람의 계획은 그 근원부터 이기적이고 탐욕적입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은 근원부터 악한 사람을 배척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항상 계획하는 바가 악한 사람을 포용하십니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 그러나 나는 악한 너를 비난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을 나무라는 것은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악하게 태어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악함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십니다. 그러기에 나의 악함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마십시오. 나의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지 마십시오. 자기 아들의 목숨까지 내어주면서 나를 사랑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이 우리를 따뜻하게 받아 주십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마음의 악함을 알면서도 품어주신 그 사랑에 보답하는 인생 살게 하옵소서.

 

황빈 목사/강성교회
황빈 목사/강성교회

이가봇. 영광은 어디에?

사무엘상 4:1~22
찬송: 28장

하루하루를 숨죽여 흐느끼며 사는 여인이 있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무분별한 생활을 지켜보면서 ‘저러다 큰일 날 텐데’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중에 아이를 얻은 것을 알고 뛸 듯이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아이를 남편과 함께 잘 키워 보리라 기도하며 가슴 벅찬 날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전쟁이 일어나고 남편은 전쟁터에서 죽고 맙니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전해 듣던 날, 여인은 아직 달 수가 차지 않았지만 갑자기 산통을 느끼며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붙인 이름. 그것은 ‘이가봇’입니다. 그 뜻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입니다(21). (원어의 문자적 뜻은 ‘영광은 어디에?’)
이 모든 일은 제사장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 가정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어느 타락한 제사장 가문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언약궤를 전쟁에서 승리할 방편으로만 볼 뿐, 언약궤가 상징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과 그의 영광스런 임재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사모하지 않았던 비느하스!
하지만 오늘날에도 다양한 얼굴과 다양한 이름으로 ‘21세기의 비느하스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 자신의 모습이 그와 같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아니라, 축복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다른 어떤 무엇이 아니라,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그리스도인의 과거와 현재 정체성

베드로전서 1:3-9
찬송: 337장

본문은 인간 거듭남의 결과에 대해 말합니다. 산 소망의 특징이 세 가지로 설명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입니다. 그 유업이 이 땅위 어떤 기관에 보관되지 않고 아무도 손 못 대는 하늘에 잘 간직되어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소망이 산 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운 희망인지는 곧 그때 드러날 것입니다.
신자가 지니는 진정한 믿음도 거듭남의 결과로 얻는 것입니다. 신자는 살 동안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우리가 산 소망을 가졌다면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 소망의 날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잘 지켜져야 합니다. ‘보호하심’은 현재형으로서 신자는 보호하심을 지금 계속 받고 있습니다. 이 완성적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으며, 그 보호를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의 특징은 그런 ‘여러 가지 시험’을 받을 때 사람인지라 잠깐 근심은 하더라도 오히려 크게 기뻐합니다. 믿음의 ′확실함′이란 믿음의 실험이나 시험(testing)이란 뜻인데 이런 믿음의 시험(실험, 시련)은 금의 제련보다 더 귀합니다. 시험을 거치면서 가치와 진정성을 입증 받습니다. 주 예수를 보지 못했지만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은 거듭난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처럼 거듭난 믿음이 결국 주의 날에 영혼의 구원을 받게 합니다.

•오늘의 기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시험 중에 기뻐함으로 잘 제련되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부활을 믿으니

고린도전서 15:12~19
찬송: 160장

부활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산 소망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가치가 있고, 영원한 복이 되는 소망입니다. 부활은 의인과 악인에게 동일 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 의인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누리고, 악인은 정죄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 집니다.
사실 부활이 말도 안 되는 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부활을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말이 되는 일은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실 일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능히 하지 못 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사실이냐? 거짓이냐? 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며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는 이 땅의 삶에 대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고, 이 땅의 인생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산다면, 이 땅의 삶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이 됩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삶이 헛된 삶이 아니라 참 복된 삶이고 가치 있는 삶입니다. 이 땅에서 부활을 믿는 사람답게, 확실하고, 분명한, 산 소망을 붙들고, 힘있게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주의 권속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부활을 믿는 사람답게 살게 하소서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내가 주를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20:11~18
찬송: 171장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좋은 일, 크게 기쁜 일, 정말 놀라운 기쁜 소식이 있으면 주변에 알리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 더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을 먼저 경험하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오늘 ‘그의 믿음’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첫째, 가장 먼저, 아직 어두울 때에, 모두가 잠자는 시간에 일찍 일어나 예수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에겐 “찾아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박함으로 찾아가는 믿음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알렸습니다. 혼자만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부활을 증언하고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이라처럼 우리도 사랑하며 알리고 있습니까? 
부활은 이처럼 믿고 기다리며 먼저 찾아간 사람들의 증거입니다. 증인은 현장을 본 사람들이 증인입니다. 부활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찾아가 만난 마리아처럼 내가 다시 살아난 부활의 주님을 보았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의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마리아처럼 증인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부활을 증언한 막달라 마리아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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