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은 예배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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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은 예배당이 아니다
  • 이의용 교수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 승인 2024.03.27 0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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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 (74)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가깝게 지내던 교인이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마침 우리 아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거금이 든 봉투를 건네주는 게 아닌가. 그 집 자녀들이 결혼할 때 내가 낸 부조금을 합쳐 한꺼번에 갚는 것이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어 받고 말았다. 교인들이 교회를 옮기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게 그동안 부은(?) 부조금을 포기하는 거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데, 그 분은 오히려 그걸 갚고 떠난 셈이다.

요즘 결혼 예식장엘 가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된다. 옛날의 결혼식은 동네 잔치였다. 동네 잔치여서 온 동네가 돈이나 물건으로 도와주었는데 이걸 부조(扶助)라 한다. 요즘은 부조금이 되었다. 부조금은 받은 만큼 주는 게 관례다. 그래서 나도 ‘부조금 출납부’를 사용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나, 내게 부조한 적이 없는 이가 청첩장을 보내오면 머리가 아파진다. 식장이 고급 호텔인 경우에도 그렇다. 내가 받은 만큼만 부조하기엔 식사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참석을 피하게 된다. 그런 경우 나는 내가 받은 액수만큼 온라인으로 송금하고 참석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격세지감은 소위 ’주례 없는 결혼식‘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은사나 유명인사,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진행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그 자리를 부모, 친구 등이  대신하고 있다. 그 엄숙하던 형식이나 분위기도 흥겨운 놀이판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교인 가정의 결혼식이다. 자녀들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원하는데, 부모는 목사의 주례로 예배 의식을 고집한다. 여기서 적지 않은 갈등이 생기고 있다. 기도 순서나 축도 순서라도 하나 넣어보려고 협상을 해보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무 순서도 맡지 못한 채 하객 자리에 쓸쓸히 앉아 있는 목사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당사자 부모나 교인 입장에서는 난처한 일이다.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나는 경직된 결혼의식을 고수해온 주례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다.

필자도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여러 번 맡아왔다. 대개는 양가의 종교가 다른 경우다. 이런 경우 양가 사이에 갈등이 크다. 그럼에도 교회는 비신자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기독교 예식을 강요하는 수가 많다. 그러니 상대 가족이나 하객은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겠는가. 

신랑신부와 하객들을
배려하는 결혼문화가 필요하다

내게 주례를 부탁해오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길고 재미없는 주례사‘ 때문이다. 하객들이 부조금 내고 식권 얻어 들고는 식장 아닌 식당으로 향하는 가장 큰 이유다. 신랑신부가 하객들에게 등을 돌린채 주례자만 바라보게 하는 결혼식도 문제다. 결혼식은 신랑신부 구경하는 잔치다. ‘의미’도 중요하지만, ‘재미’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개발한 독창적인 문화가 있다. 우선, 자장면 파티! 신랑신부를 만나 자장면을 사주면서 인사를 나누고 인생의 멘토가 되어 실질적인 주례사를 해준다. 서로 아는 것 없이 만나 주례를 해주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어서 문제 풀이! 50개의 문제를 둘이서 함께 풀어오도록 한다. 대부분 결혼 후 겪게 될 갈등거리들이다.

결혼 1주 전에 다시 만나 결과를 주례자가 확인하고 조정을 해주는데, 이때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둘 낳겠다는 신랑과 안 낳겠다는 신부였다. 이리 중요한 문제를 협의하지 않고 결혼부터 하려 하다니…. 그리고 사랑의 고백문(10문장)을 작성하고, 결혼 후 실천할 사랑의 다짐문(10가지)을 작성하여 액자로 만든다. 그리고 결혼식순을 기획한다. 물론 기도도 해준다.

드디어 결혼식. 주례자는 두 사람이 마주 보게 하고 식을 진행한다. 하객들이 얼굴을 볼 수 있게. 사랑 고백문, 사랑 다짐문을 낭독하고 액자를 교환한다. 주례사는 하객들을 위한 5분 특강으로! 오랜만에 만난 하객들은 시끄럽기 마련. 5분만 할 테니 집중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그리고 하객을 위한 특강을 시작한다. 단골 주제는 ‘감사’. 찬송가나 기도 순서는 없지만 기독교의 정신과 문화를 깊이 접하는 좋은 기회다.

예식장은 예배당이 아니다. 하객 중에는 비신자나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도 많다. 바쁜 시간 내서 왕림한 하객들이 식장 대신 식당으로 향하게 된 데에, 그리고 젊은 세대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호하게 된 데에 우리 교회의 책임은 없는가? 예식장 결혼식은 목사가 많은 비신자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지금이라도 신랑신부와 하객들을 배려하는 결혼문화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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