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생명이 약동하고 분출하는 생명신학이 얼마나 중요한가? 성경을 통해 예수생명의 약동과 분출(噴出)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제 교회역사 속에 이것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비(非)정통주의 신학은 예수생명의 숙적(宿敵)이다. 하버드의 조직신학 교수 하비 콕스(Harvey Cox)는 1965년 <세속 도시>(The Secular City)라는 책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세속화 도시화 된 현대에 ‘하나님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딱 30년 후 1995년에 그는 <하늘로부터 온 불>(Fire From Heaven)이란 책을 통해 ‘성령은 불같이 역사하신다.’고 공언했다. 그 책에서 그는 ‘성령’을 대문자 ‘성령’(Spirit)이라 해서 제3위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소문자 복수로 ‘영들’(spirits)이라고 해서 잡신(雜神)을 암시했다.
하비 콕스는 ‘무당 굿’ 같은 성령론을 주장한 정현경 교수의 사상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정현경 교수는 1991년 호주 캔버라 WCC 제7차 총회 기조연설에서 초혼(招魂)을 통해 ‘오소서, 성령이여!’라고 했다.
“한국 광주와 중국 천안문에서 죽은 영들, 십자군 전쟁에서 죽은 영들, 체르노빌에서 죽은 영들, 매일 살해되는 아마존 숲의 영들, 걸프전에서 죽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영들, 착취를 당하는 땅과 공중과 물의 영으로부터 십자가에서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우리의 형제 예수의 영, 예수 탄생 시 헤롯왕의 군인들에 의해서 살해된 아기들의 영들에게 ‘오소서’(Come!)”라고 한 것이다.
초혼적(招魂的) 성령론과 같은 비정통신학을 통해 예수생명이 약동하고 분출하겠는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자 예수의 생명은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만 약동하고 흘러간다.
신학의 쇠퇴는 교회의 쇠퇴를 낳는다. 김승연 선교사는 <유럽교회는 어디로 갔는가: 서구교회의 몰락과 한국교회의 미래>라는 책에서 유럽교회의 쇠퇴와 몰락의 원인을 신학의 변질에서 찾았다.
정통주의신학이라 할지라도 예수생명이 거의 없는 신학이 될 수 있다. 그레임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는 <복음중심의 해석학>에서 교회역사 속의 ‘복음의 퇴색’(eclipse)을 짚으면서 복음주의 안에서도 복음이 퇴색한 것을 지적했다.
왜 그런가? 복음주의 신학 안에도 예수생명의 복음이 변질되거나 약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골즈워디는 복음 회복의 길이 ‘그리스도의 해석학’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활, 십자가와 부활, 그리스도를 통한 만유 회복을 강조하는 성경해석이 복음 회복의 길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또 질문이 나온다. 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해석과 설교를 하는데도 왜 예수생명이 약동하고 분출하지 않는가?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해석과 그리스도 중심의 강해설교를 해도 그것을 머리로만 하기 때문이다. 가슴이 식고 손발이 마비된 채 머리로만 하는 정통신학은 정통신학이라 해도 ‘죽은 정통’(dead orthodoxy)이 될 수밖에 없다. 성경 말씀의 묵상을 통해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의 불을 체험하지 못하면(렘 23:29) ‘죽은 정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릎 꿇고 기도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불’을 체험하지 못하면(눅 11:13), 예수생명의 약동과 분출을 체험하지 못한다. 말씀 한마디에 인생을 걸고 어떤 불이익과 고난도 감수하는 십자가 정신과 십자가 생활이 없으면(마 16:24-25), 생명신학과 생명체험은 불가하다.
하비 콕스는 ‘오순절적 영성의 재기를 통한 종교의 재형성’을 주장했지만, 성경의 진리를 떠난 비정통주의 신학이라 예수생명의 약동과 분출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스도 중심의 정통주의 복음신학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통해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면 예수생명을 체험하지 못한다. 성경대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할 때만 예수생명이 약동하고 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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