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어머니의 새벽기도 바통을 이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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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어머니의 새벽기도 바통을 이어받아
  • 신헌재 장로
  • 승인 2024.02.2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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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재 장로/서울우이감리교회 원로장로,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신헌재 장로/서울우이감리교회 원로장로,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초겨울 새벽, 섭씨 영하의 매서운 새벽바람을 뚫고 새벽기도 길을 나섰다. 목도리와 마스크로 무장을 하느라고 했지만 파고드는 새벽바람은 어쩔 수 없다.

서울 우이동의 자랑인 ‘솔밭 공원’이 있는 이곳, 북한산 기슭이 좋아서 나는 1년 전에 이사 왔는데 다른 것은 다 좋아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다름 아니다. 내가 결혼하고 지금까지 46년 동안 다니던 교회가 멀어졌다는 점이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걸어서 고작 10분 이내 거리였는데 지금 이사 온 솔밭 공원 부근에서는 우리 교회까지 버스로 가도 세 정거장 거리나 된다. 그래서 걸어다니기에는 다소 부담을 주는 거리라는 점이다. 하긴 그 정도라도 날씨 좋은 주일 아침에는 도보로 가더라도 큰 부담이 없는데 문제는 매일 새벽기도를 다닐 때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추운 겨울 새벽, 북한산 골짜기에서 부는 찬 바람을 안고 걷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운전대를 좀 더 잡을 것을 너무 일찍 놓아버렸구나 싶은 때늦은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면서 새벽기도에 가려고 새벽 버스를 기다리는데 출근 때와는 달리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또 너무 길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에 차라리 걷는 게 낫겠다 싶어 만 보 걷기도 하는 데 한번 걸어가보자 하고 걸어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걷기에는 좀 멀다고 여겨졌지만 하루 이틀 걸어보니 집에서 교회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면 25분밖에 안 걸리고 왕복하면 5천여 보 쯤 되니 하루 만 보 걷기 실천에는 딱 좋은 거리다 싶어 그 새벽기도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습관이 되다보니, 매일 걷는 그 길도 정이 들면서 그리 멀어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매일 새벽기도를 걸어가는 데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이는 내 어릴 때 시골에서 가끔씩 어머니를 따라 함께 다니던 새벽기도 길의 추억에서 오는 것 같다. 오늘같이 추운 새벽에도 걷기를 마다하지 않는 내 속의 동기도 바로 거기서 오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어릴 때 새벽기도에 자주 간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 한 해에 몇 번 무슨 행사를 할 때나, 또는 어머니께서 무슨 일이던가 전날부터 함께 가자고 이르실 때 마지못해 어머니를 따라 새벽기도를 갔던 것이 고작이다. 그래선지 새벽기도에 갔어도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고, 내가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다만 내 머릿속에 남는 것은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어슴푸레한 새벽길, 어머니의 활기 띤 걸음걸이, 그리고 가끔씩 교회를 오가며 어머니와 나누던 대화 몇 마디가 고작이다.

그 대화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다름 아니다. 어머니는 무슨 말끝에선가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불교 같은 종교는 사람이 입산해서 십 년 공부하며 애써 공을 들여야 도를 깨닫고 극락에 간다는데, 교회에 다니는 우리는 그런 고생 않고도 사랑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붙잡고 천국에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말씀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 속에는 사도 바울 선생이 강조하신 바, 우리 구원은 인간적 공덕을 쌓아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구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 정신이 담긴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고작 여덟 살 정도였으니 거기서 무엇을 깨달았다는 기억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새벽기도 길에 하신 그 어머니 말씀이 지금껏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은 까닭은 무엇일까? 비록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였지만 우리 어머니가 매일 새벽기도로 섬기시는 교회야말로 이 세상 무슨 종교보다 귀하고 소중한 곳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각인되지 않았던가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단둘이 걷던 그 새벽길의 오붓함이 그저 아름답고 멋진 추억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어머니는 올해 우리 나이로 꼭 백 세가 되신다. 그래서 예전처럼 새벽기도는 못 가시는 대신 집에서 <매일성경>을 가지고 혼자 새벽 제단을 쌓으신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어머니께서 평생을 두고 새벽길을 밟으시며 우리 가족과 나라와 사회를 위해 새벽 제단을 쌓아오시던 어머니의 바톤을 이제 내가 이어받은 셈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도 어머니께서 해 오신 기도에 이어 어머니 말년의 건강을 위해 새벽 제단을 쌓으려 새벽길을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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