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 “신앙은 이성이 떠난 자리에서 시작된다”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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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 “신앙은 이성이 떠난 자리에서 시작된다” 주장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4.02.0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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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_ 45) 신앙주의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신앙주의(fideism)는 한 마디로 “덮어놓고 믿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입장은 개혁주의신학의 입장은 아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이 충돌할 때 미련 없이 신앙적인 것을 택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성적인 것을 무작정 반대하는 신앙주의의 입장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합리주의가 나는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intelligo)는 입장을 견지한다면, 신앙주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est)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에, 고전적 전통에 서 있는 복음주의 신학이나 개혁주의신학은 이해하기 위하여 나는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는 입장을 취한다. 합리적 신앙주의가 개혁주의신학의 이성과 신앙에 대한 바른 입장이 될 것이다.

보통 신앙주의의 입장을 취했던 사람들의 이름으로 초대교회 교부였던 터툴리안,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그리고 <팡세>의 저자 블레즈 파스칼을 거명하곤 한다. 비교적 현대로 들어오면 쟈크 엘률이나 초기의 칼 바르트 등의 신학자들의 이름을 거명하곤 한다. 이들의 이름과 함께 신앙주의자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철학자는 죄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신학을 가리켜 도날드 블로쉬(Donald G. Bloesch, 1928 ~2010)는 역설의 신학(theology of paradox)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19세기의 뛰어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덴마크의 철학자였다. 그는 누구보다 우리 시대를 위하여 신앙주의에 확고한 신학적 토대를 놓아준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의 진리는 그냥 이성을 초월할 뿐 아니라 이성에 거슬러 대항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하나님의 타자성(otherness)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헤겔 학파의 급진적인 내재주의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환영할 만한 해독제가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타자성에 대한 일면적인 강조는 성경이 말하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되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실 정도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는 모순되는 불균형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은 정확히 말해서 이성이 떠난 자리에서 시작된다”라고 주장하였다. 신앙의 기적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수적이고, 진리는 우리에게 안으로부터 다가오지 않고 밖에서부터 주어진다고 확고하게 주장하였는데 이런 부분은 개혁주의신학과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로쉬는 만일 우리가 키에르케고르를 계속 따라간다면 결국 하나의 불완전한 기독교에 이르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키에르케고르의 역설의 신학이 무가치한 것은 아님을 블로쉬는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의 수많은 심원한 통찰력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신앙의 정열이 약해질 때 신앙의 진리도 점차 더욱 희미해지고, 어쩔 수 없이 실수와 어리석음이라는 특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날카로운 관찰을 우리는 신중하게 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앙의 진리를 존중할 만하고 합리적인 것을 만들려는 시도보다 더욱 신앙의 열정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과 사의 결단을 내려야 할 필요성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에 대해 비판한 사람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은 프랜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 1912~1984)일 것이다. 이른바 절망의 선(line of despair) 아래로 떨어진 최초의 인물로 쉐퍼는 헤겔과 키에르케고르 그리고 바르트를 지목하였다. 쉐퍼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인식론에서의 위기 즉 상대주의의 출현에 대해 경계하였다.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의 경계가 흐려지고 절대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 쉐퍼는 우려하였고 그것이 현대문명의 심각한 문제요 질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쉐퍼의 분석에는 다소 지나친 단순화가 존재한다. 쉐퍼는 기독교가 정말이지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비합리주의에 대한 유일하게 타당한 대안이라고 가정한다. 또한 쉐퍼의 분석에는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신념이나 행동에 있어 가지는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나 쉐퍼 두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결국 진리의 한 국면만을 보기 참 쉽다는 교훈을 받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 신앙의 역설적인 면에 강조점을 두었다면 쉐퍼는 현대 문명의 상대주의 위협에 직면하여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변호하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키에르케고르나 쉐퍼나 신랄한 비판보다는 애정어린 비판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쉐퍼는 키에르케고르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는데 이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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