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태아는 단순한 세포가 아닌, 생명체이자 존중받아야 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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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태아는 단순한 세포가 아닌, 생명체이자 존중받아야 할 인간”
  • 정하라 기자
  • 승인 2024.02.07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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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생명으로 ② 생명의 씨앗 ‘태아’ 보호해야(상)

우리나라 낙태 건수 약 하루 3천건, 연간 110만건
헌재의 낙태죄 폐지 이후 입법공백 4년 혼란 가중
임신 5주부터 태아의 심장박동…신경세포 발달 시작


‘쿵쾅쿵쾅-’

엄마의 뱃속에 아기집이 생기고, 임신 5~6주가 되면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생명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소리다. 초음파를 통해 새 생명이 약동하는 모습과 유난히도 쿵쾅거리는 태아의 심장 소리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10달 동안 인고(忍苦)로 생명을 품은 산모는 해산의 수고를 겪으며, 거대한 세상 앞에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작은 생명을 껴안는다. 작고 보드라운 손과 보송한 솜털이 돋운 갓난아기가 온 힘을 다해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감동이 밀려온다.

모든 생명의 탄생이 이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존재 자체로 축복받는 생명이 있다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죽어 없어지는 생명도 있다. 엄마의 선택을 받지 못한 태아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분명 생명이었던 형체는 차가운 수술대 바닥에 검붉은 핏덩이로 남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렇게 사라지는 태아는 연간 11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연간 30만여명의 신생아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감안한다면, 4명의 태아 중 1명 만이 세상의 빛을 보는 셈이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모태’에서 시작된다. 모든 사람은 자신도 한때는 작은 배아에서 시작해 태아로 자라난 존재였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작은 태아라도 ‘생명의 씨앗’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라는 수치는 우리나라에 깊게 드리운 죽음의 문화를 실감하게 만든다. 태아는 죽음의 위협 앞에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타인으로부터 생명을 방어할 권리를 가진다. ‘인권’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생명권’은 그중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인간의 최약체인 태아의 생명권에 대해선 법적으로 존중받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 누군가는 태아를 대신해 ‘생명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태아가 단순한 몸의 세포 중 하나가 아니라, 수정 순간부터 하나의 생명체이자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가르쳐야 한다.

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라는 수치는 우리나라에 깊게 드리운 죽음의 문화를 실감하게 만든다. 이제 누군가는 태아를 대신해 ‘생명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사진 출처:포리베)
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라는 수치는 우리나라에 깊게 드리운 죽음의 문화를 실감하게 만든다. 이제 누군가는 태아를 대신해 ‘생명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사진 출처:포리베)

“태아도 엄연히 고통 느낀다”

“임신 10주의 태아도 자기와 팔, 다리 등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와 같이 통증도 느낀다. 다만 아프다는 비명을 지르지 못할 뿐이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폐지 결정 이후 ‘낙태죄 헌재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홍순철 교수(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의 말이다. 의학적으로 태아는 임신 5주 3일이면 심장이 뛰고, 10주 후부터는 장기와 팔, 다리가 모두 형성돼 사람의 모습을 완성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산전 기형아 검사를 위해 10주된 태아에게 바늘을 가까이 들이대면 필사적으로 피하려는 태아의 움직임이 관찰된다고 한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서 신경도 함께 발달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프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 이들의 고통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낙태 건수는 2017년 기준 연간 110만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태어난 신생아 수 30만 3천여 명의 세배를 웃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이 지난 2021년 발표한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49세 여성 8,500명 중 7.1%(606명)가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3,519명) 중에서는 17.2%로 5명 중 2명에 가까운 수가 낙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태 경험자 대부분은 피임을 안 했거나 불완전한 피임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고 답했다. 낙태 경험 여성에게 피임 여부를 물었을 때 ‘콘돔, 자궁 내 장치 등으로 피임’한 경우, 즉 비교적 확실한 피임을 선택한 비율은 11%에 불과했다. 대부분인 89%는 ‘사전, 관계 시, 사후 어떠한 피임도 하지 않거나’(46%), ‘질외사정법, 월경주기법으로 피임’(41%) 하는 등 불완전한 피임법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입법 공백’ 상태가 지속되면서 주수와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낙태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법 개정을 위해 헌재가 설정한 유예기간마저 도과하자 모든 종류의 임신중절에 대한 처벌 규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임신 중지와 관련된 법률은 형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임신 중지 허용 범위로 다음의 다섯가지 경우로 제한을 뒀다. 첫째 본인·배우자가 유전학적 장애가 있는 경우 둘째 본인·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셋째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넷째 혈족·인척 간 임신된 경우 다섯째 본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다.

그 외의 이유로 행해진 수술은 형법에 의해 임신 당사자와 의료인 모두 처벌받아왔다. 헌재의 결정으로 2021년부터는 모자보건법의 수술 허용 범위만 남게 됐다. 허용 범위에 벗어난 수술이 이뤄진다고 해도 처벌할 법은 없는 ‘무법지대’가 된 것이다. 불법으로 암암리에 자행되던 중절 수술이 더욱 성행하고 태아에 대한 인권유린도 더욱 만연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각종 포털사이트에 낙태나 중절수술을 입력할 경우 헌재의 ‘낙태죄 폐지’ 판결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임신중절을 홍보하는 산부인과 광고를 흔히 쉽게 찾을 수 있다.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서도 임신 26주가 지났는데,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오고 간다.

의학계에서는 현 의료기술에서 임신 22주 내외부터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임신 20주 이상 태아 사망을 ‘유산’이 아닌 ‘조산’(조기분만)으로 정의한다. 법적 공백 상황에서 비교적 생존율이 높은 중후기의 태아도 무분별하게 죽이는 중절 수술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낙태가 피임방법이 되어선 안 돼”

사단법인 프로라이프(전 낙태반대운동연합) 함수연 대표는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낙태 관련 상담이 현저히 줄었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프로라이프 사무실에서 만난 함수연 대표는 “2021년 이후부터는 성인 여성의 상담이 현저히 줄어들고 청소년 상담이 늘었다. 낙태죄가 폐지됐다는 인식 속에 고민하지 않고 낙태를 결정하는 성인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단법인 프로라이프 함수연 대표는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낙태 관련 상담이 현저히 줄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청소년 상담이 늘었으며, 오히려 낙태를 결정한 상태에서 낙태를 위한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느냐는 상담이 오기도 한다는 것. 이미 낙태를 상담할 수 있는 카페에서는 돈만 있으면 낙태를 쉽게 할 수 있는 ‘원스톱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지난 2022년에는 임신 8개월의 임산부가 상담을 해왔지만, 결국 낙태를 결정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특히 ‘30주 이상’의 임신 말기 낙태 수술에 대응할 입법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임신 말기 중절 수술은 1,000만원이 넘는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함 대표는 “배 속에서 아이를 죽이면 낙태라고 하지만, 아이가 나와서 죽이면 영아 살해가 된다. 그렇기에 아이를 낳아 기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들은 뱃속의 태아를 최대한 죽이는 선택을 한다. 심지어 35주에 태아를 중절하고 세상에 살아나오더라도 방치해 죽게 만드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낙태죄 폐지 이후 낙태를 하나의 새로운 피임방법으로 생각하는 생명 경시 경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함 대표는 “상담을 해보면, 남성들이 낙태에 대해 더욱 쉽게 생각하고 종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전에는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서 피임했던 부분도 낙태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로 더욱 책임감 없이 행동하고 있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주장했던 ‘낙태죄 폐지’가 오히려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류는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며, 취약계층의 권리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발전돼 왔다. 여러 인권의 참상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나설 수 있지만, 태아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끌기 어렵고, 태아 본인이 직접 나설 수도 없다.

함 대표는 “이제 성 소수자부터 사회의 모든 계층의 권리를 말하고, 심지어 반려동물의 권리까지도 주장하는 세상이 왔다. 그런데 태아의 권리에 대해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너무 억울하고 공정하지 않은 처사일 것”이라며, “최약체 계층인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생명을 말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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