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1~6장이 다니엘과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난 일들의 서술인 데 비해, 7장부터는 다니엘이 본 환상과 그 해석을 알려주는 이른바 묵시문학의 형태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묵시문학의 흐름은 구약에서 이사야와 에스겔, 학개, 스가랴 등 예언서에 이미 발견되지만, 가장 본격적으로 다니엘서에,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복음서 안의 소묵시록을 지나 요한계시록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묵시문학을 보면 감추어진 비밀과 신비를 인간에게 보여주는 신비로운 존재가 등장하는데, 네 짐승의 환상을 본 다니엘이 그 뜻을 알지 못해 근심하고 번민할 때 그 뜻을 해석해주는 이가 그렇습니다(15~16절). 앞서 1~6장에서 다니엘이 왕들이 꾼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갖춘 이로 소개되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환상의 해석에 관한 이같은 묵시문학적 묘사는 신비감의 고조와 더불어 임박한 고난이 단지 견뎌내야 할 과정일 뿐 아니라 더 크고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장치라는 사실을 또렷이 부각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묵시를 전달하시는 것은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이 맞닥뜨려야 할 고난을 알려주시고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섭리를 대망하는 믿음으로 견딜 수 있게 준비시키시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 묵시문학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7장에서 다니엘이 받은 환상은 두려운 모습을 한 네 짐승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3-4절).” 바다의 네 귀퉁이, 사면에서 이는 바람, 큰 짐승 넷. 우리가 온 세상을 가리켜 ‘동서남북’ 혹은 ‘사방’이라 부르는 것과 동일하게, 온 세상을 뒤흔드는 신비로운 존재와 그 파급력을 묘사하는 방법입니다. 네 짐승은 ‘괴물’이라 불러 마땅한 모습을 지녔습니다. 첫째는 사자의 형상인데 독수리의 날개를 가졌고, 날개가 뽑히더니 두 발로 서고, ‘사람의 마음’을 받은 짐승입니다(4절). 둘째는 곰처럼 보이는 데 이빨 사이에 큰 갈빗대를 문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됩니다(5절). 셋째는 표범의 몸에 새의 날개 넷과 머리가 넷인 강력한 괴물입니다(6절). 넷째는 앞의 셋을 압도합니다.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7절).” 점입가경, 닥쳐오는 미래가 점점 어두워질 것을 암시하는 그림입니다. 다니엘이든 그 누구라도 이런 흉흉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힘들겠습니까. 예언자들이 이런 예언을 히브리어 ‘마싸’ 즉 무게 혹은 짐이라 불렀던 것이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무거운 책임감을 덜어주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바로 암울한 미래와 더불어 신적인 존재의 위로와 소망입니다. 다니엘은 네 괴물의 두려움을 이기고도 남을 신비로운 존재를 만납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9, 13절).” 영원부터 영원까지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그가 정하신 구원자의 모습입니다. 이 인자 같은 이는 물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신비를 알려주시는 그분,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물려받은 그 분의 권세는 영원하고 그의 나라는 결코 멸망하지 않기에, 우리는 닥쳐올 환난을 기꺼이 감당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고난의 신비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에 다가갑니다. 할렐루야!
백석대·구약신학
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119) - “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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