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웰다잉 감성코치로서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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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웰다잉 감성코치로서의 다짐
  • 김미정 웰다잉강사
  • 승인 2024.02.0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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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주부에서 음악치료사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기타연주와 노래로 많은 아픔과 음악으로 소통하며 작은 달란트로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자존감, 소명감이 생겼다.

처녀 시절 초등학교 교사를 하신 어머니께서 즐겨 불렀던 노래들(‘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즐거운 나의 집’, ‘메기의 추억’)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뜻도 모르면서 따라 불렀고 그 리듬 그 멜로디는 나의 무의식 한쪽에 곱게 쌓여갔다. 지금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곤 한다.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노래를 즐겨 하셨고 내가 기타를 들면 노래할 준비를 하셨다.

음악치료사 초기에 치매노인, 요양원, 호스피스 병원, 정신병동, 다문화가정, 한센인, 자폐 아동, 구치소, 교도소, 우울증환자 등 많은 아픔과 음악으로 소통하며 울고 웃던 시간은 내 삶의 귀한 흔적이다. 다양한 대상에게 다양한 콘텐츠로 수업을 하며 작은 창조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노인병원에 7년간 계셨던 시아버님께 노래를 해드리면 여린 손으로 박수를 쳐주셨고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아버님 오른손을 잡고 ‘고향의 봄’을 허밍하는 가운데 아버님은 조용히 떠나셨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분의 요청으로 ‘amazing grace’를 불렀는데 호흡이 멎는 순간까지 나를 기억하겠다던 40대 환자분의 눈물을 기억한다. 노인병원에서 누워만 있어야 했던 한 어머님은 옛날 노래 ‘사랑’을 당신 노래하고 하면서 그 애틋한 노래를 부르면서도 미소를 지으셨다. ‘울고 넘는 박달재’가 남편의 18번이라며 만날 때마다, 돌아가신 남편 자랑을 녹음기처럼 하신 치매 어머님이 떠오른다.

치매에 걸린 친정엄마가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 감사의 눈물과 함께 따뜻한 커피를 주신 따님의 손길을 기억한다. 암 수술 회복 기간에 환자들과 가족과 함께 했던 수업에서, 가족과 남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줘서 감사하다는, 유방암 회복기 여성 환자의 눈물이 떠오른다.

몇 십년 만에 노래를 하게 되었다고 꾸벅 절하는 심화정신병동의 70대 중반 어르신의 쑥스러워하는 미소가 떠오른다. 일그러진 자기의 손을 잡아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한 한센인의 진솔한 표정이 떠오른다. 생각지도 않게 눈물 흘리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은퇴자분을 기억한다. 먼저 떠난 아내를 향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며, 내 손 잡아주신 충혈된 눈의 어르신을 기억한다.

나의 작은 달란트가 누군가의 아픔과 생의 마무리에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음악은 모두의 공통분모였다. 어떤 강의에서도 음악치료사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잠시라도 음악으로 소통한다. 웰다잉 수업은 모든 것을 통합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음악이 있는 웰다잉 수업은 감성 표출을 용이하게 하며 치유와 회복을 통해 아름다운 마무리 추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음악과 인문학과 웰다잉의 하모니는 나의 작은 목표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주신 달란트에 감사하며 기타 줄을 튕길 수 있을 때까지,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행복을 나누며 웰다잉 감성코치로서 ‘아름다운 마무리’에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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