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산책] 변증가들, 교부들과 교량 역할한 최초의 ‘조직신학자들’
상태바
[초기 기독교 산책] 변증가들, 교부들과 교량 역할한 최초의 ‘조직신학자들’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4.01.23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185) - 기독교 신앙을 변증한 사람들(22)
이상규 박사
이상규 박사

변증가들은 성육신에 대해 말하면서 신성과 인성의 참된 연합을 주장하였고, 가현설과 양자론을 거부했다. 성육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성자의 인격성(personality)을 명백하게 드러내지 못했는데, 이것이 양태론을 말한 사벨리우스주의의 길을 열었고, 또 아들은 산출(projection)에서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표현은 아들의 영원성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서 이런 표현이 후일 아들은 하나님이 아니고 첫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아리우스주의를 배태하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변증가들은 선택과 예정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견해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마치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에 기초한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변증가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서는 굳게 믿었지만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었다. 예컨대, 타티아누스나 테오필로스는 불멸의 삶을 의인들에 대한 상급이자 악인들에 대한 징벌로 보았는데, 유스티누스도 이런 입장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변증가들은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진리가 ‘이성적’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공허한 논리나 비이성적인 주장이 아니라 기독교의 진리의 합리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리스 철학을 도구로 기독교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변증가들 역시 그리스 철학을 도구로 기독교를 해명했기 때문에 이성의 한계 안에서 기독교를 설명했다고 할 수 있다.

변증가들의 활동에 대해 독일의 하르나크(Adolf von Harnack, 1851 ~1930)나 그의 동료이나 제자였던 프리드리히 루프스(Friedrich Loofs, 1858~1928) 같은 교리사학자들은 변증가들이 믿음을 교리로 변질시킴으로서 복음의 헬라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기독교를 변호하거나 방어하거나 해설함으로서 변증가들은 교리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후스토 곤잘레스는 변증가들은 사실상 최초의 조직신학자들이라고 말한다(<기독교사상사1>, 150쪽). 이들은 그 이전시대 사도교부들과 그 이후 시대 곧 3세기 교부들을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변증작업은 초대교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세기 이래로 오랜 기간 동안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이들이 있었다. 초대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 중세의 캔터베리의 안셈(1033/1034~1109),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 둔스 스코투스(1266~1308), 윌리엄 옥캄(1287~1347) 등이 있고, 파스칼(1623~1662)은 계몽주의 이전의 기독교 변증가였다. 19세기 이후에는 영국의 작가였던 G. K. 체스터턴(1874~1936)이나 C. S. 루이스(1898~1963),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코닐리어스 반틸(1895~1987), 영국의 철학자 G. E. M. 앤스콤(1919~2001) 등이 기독교 신앙을 변호했던 이들이다. 최근 인물로는 노만 가이슬러(1932~2019), 앨빈 플랜팅가(1932~ ), 월터스토프(1932~ ), R. C. 스프롤(1939~2017), 그리고 오스 기니스(1941~ ), 윌리엄  크레이그(1949~ ), 그리고 지난 5월 19일 세상을 떠난 팀 켈러(Timothy J. Keller, 1950~2023)와 같은 이들이 자신들의 저서나 작품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변호했다. 

일반적으로 변증학(Aologetics)이란 철학이나 사상적 측면에서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학문이라면, 험증학(Christian Evidences) 자연과학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고, 비교종교를 통해 기독교의 우월성을 변증하는 학문을 엘렝틱스(Elenctics)라고 한다. 이 분야를 개척한 학자가 헤르만 바빙크의 조카인 요한 바빙크(J. H. Bavinck)였다.

백석대·역사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