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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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리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1.02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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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1월이다. 사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을 평범한 겨울날이다. 그런데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하루가 1월 1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자 새해 첫날이라는 꽃이 되었다. 이름이 갖는 힘은 이토록 신비하고 놀랍다.

개중에 1월 1일이라는 이름은 유독 특별하다. 1월 1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평소엔 생각지도 않던 한 해의 계획과 다짐을 장황히 떠올린다. 새해 다짐이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운동을 시작해보겠다는 것은 ‘건강히 살아보겠다‘는 답변이고, 책을 열심히 읽겠다는 것은 곧 ‘지식과 교양을 쌓으며 살겠다‘는 답변과 다름 없다. 시류에 몸을 실어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기자가 될 것인가.

‘우리의 신앙은 답을 찾는 과학이 아니라 모호함을 견디는 믿음이다.’ 한 선교사님의 SNS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만났다. 기자로 살아가는 나는 이 표현이 퍽 와닿았다. 어쩌면 교계 기자는 누구보다 자주 신앙의 모호함과 마주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예배와 설교가 반복되다 보면, 거룩해야 할 예배는 의례적인 식전행사가 되고 은혜로워야 할 설교는 받아 적어야 할 일감이 된다.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본질이 혼탁해지고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저 묵묵히 모호함을 견디어내는 수밖에는. 다만 때로는 의지를 꺾는 현실과 마주하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묻는 그 물음에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 뜬구름 잡는 소리는 그만하라는 현실의 유혹에도 구태여 해묵은 질문을 끄집어 내는 것이 교계 기자가 걸어야 할 길일 게다.

한파에 내몰린 주목 받지 못한 약자들이,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피 흘리는 이들이 묻는다. 당신네 기자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플라스틱 쓰레기에 목을 옥죄인 대양의 고래가, 교회 가는 길조차 막힌 장애인의 휠체어가, 터무니없는 사고에 자식을 잃은 부모가 1월을 구실삼아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명령하신 예수님께서 물으신다. 어떻게 살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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