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성공은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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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성공은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3.12.27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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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각장애인들이 만드는 수제구두 기업 ‘아지오’(AGIO)의 새해 소망

편견 딛고 장애인에서 장인으로…최고급 품질의 수제구두 제작
투명한 기업 운영에 수어통역사 두고 장애인들과 ‘신뢰’ 구축해
판로 개척하고 서포터즈 모집…장애인들의 안정적인 자립 도모
아지오의 모든 직원들이 환한 얼굴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개업 3년 만에 실패를 맞고, 폐업 4년 만에 재기한 기업이 있다. 장애를 딛고 장인으로 거듭난 청각장애인들이 모여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구두를 만드는 곳, 바로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의 브랜드 아지오’(AGIO) 이야기다.

세간의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품질로 승부하는 이들은 정성스레 한 땀 한 땀 수놓는 구두에 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아지오의 신발을 신는다는 건, 청각장애인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변화시킬 희망을 선물하는 일이다.

물론 운영의 어려움은 여전한 과제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는 직원들의 건강한 자립을 위해, 눈물의 기도로 사명을 이어가고 있는 이선우 대표는 지난해 하나님께서 기적의 역사를 써 내려가셨다, 새해 간절한 소망을 함께 이야기했다.


생명을 살리는 구두
아지오란 기업은 존재 자체가 기적이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곳입니다.” 지난 연말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아지오 사무실에서 만난 이선우 대표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과거 한차례 문을 닫아야 했던 아픔을 극복하고 새 둥지를 튼 이곳은 맞춤형 수제구두를 생산하는 공장이자 청각장애인들의 소중한 일터다. 그런 만큼 분주한 작업에 여념이 없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쳐 보였다.

아지오가 세워진 때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설립자였던 유석영 전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이 뛰어난 제화기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아지오를 창립했다. 그러나 아지오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38개월 만에 빚을 가득 떠안은 채 실패를 맛보았다.

아지오가 힘찬 재도약을 알린 건, 그로부터 약 4년이 흐른 2018년이다. 우연한 기회로 아지오의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전해지자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마침내 아지오는 십시일반 출자금을 내는 사회적협동조합의 형태로 재기에 성공했다.

현재 아지오는 15명의 청각장애인과 1명의 지체장애인, 그리고 5명의 비장애인과 2명의 수어통역사들로 이뤄졌다. 다만 아지오의 설립자이자 재창업을 이끈 유석영 전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내려와 후방에서 묵묵히 섬기고 있다.

대신 기존에 법인이사였던 이선우 대표가 작년 3월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수장의 역할을 감당 중이다. 그러나 CEO로서 살림을 맡아 달라는 아지오의 끈질긴 요청을 처음부터 선뜻 수락하는 게 쉽진 않았다. ‘편안함·안락함이란 뜻의 브랜드명을 공모한 이도 이선우 대표였을 만큼 아지오에 대한 애정이 크지만, 그는 아지오의 시즌2’를 극구 말렸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사실 저는 아지오의 부활을 반대했던 사람이에요. 사회적 약자인 청각장애인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건 선한 뜻이지만, 고생길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죠. 아지오의 새 대표직을 고사하려던 까닭도, 25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곧 정년을 앞둔 상황에서 노후를 편하게 보내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지오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숙명같았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뿌리칠 용기 또한 없었다.

기도 가운데 광야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생명을 살려보자는 결단이 섰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돌봄 위주의 장애인 복지관이나 거주시설도 필요하지만, 청각장애인들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잘 알았거든요. 이것이 곧 한 사람을 살리는 길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지오 이선우 대표.

하나님이 선물한 기적
아지오의 새 대표가 된 이후로 평생 이렇게 많이 기도를 해본 적이 없다고 웃어 보인 이선우 대표는 취임 직후 통장 잔고를 보니, 말도 안 되게 적어서 충격을 받았다. 그날로 21일 다니엘 저녁 금식 기도를 진행하며 오직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들려주었다.

놀랍게도 그의 간절한 기도는 지난 2023년 한 해 아지오에게 세 가지 기적으로 응답되었다. 우선, 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협업을 통해 오프라인 판매를 일군 것이 첫 번째 기적이다.

그는 “21일 기도가 끝나는 주간 기적이 발생했다. 아지오의 스토리가 담긴 책 <꿈꾸는 구둣방>을 읽고 감동을 받은 한 두레생협 관계자를 통해 생각지도 못하게 팝업 스토어를 차리는 물꼬를 튼 것이라며 지난해만 서울·수도권 100여개의 매장에서 매출을 올려 상당한 빚을 갚았다고 간증을 전했다.

아지오에게 찾아온 두 번째 기적은 해양경찰청에 6,900켤레의 기동화를 납품한 일이다. 아지오가 2020년부터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을 설치·운영해온 덕분에, 공공기관과 경쟁이 치열한 입찰 대신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단가가 낮은 대기업과 붙는 입찰은 우리가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단체화 납품에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수의계약이란 방법으로 멋지게 일하셨습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마치 하나님의 격려처럼 느껴졌죠. 한 달에 고정 지출만 수천만원인 상황에서 걱정하던 저에게 하나님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크고 깊은 계획들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안겨주신 세 번째 기적은 아지오 서포터즈의 발족이다. 이는 매달 1명이 1만원을 후원하는 프로젝트로 24개월이 되면 20만원 상당의 아지오 신발을 선물로 돌려받는다. 그렇게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무려 800여명의 후원자가 모였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서포터즈가 5,000명을 달성하면 걱정이 없겠다는 이선우 대표는 매달 매출의 압박이 크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안정적으로 급여를 주기 위해선, 반드시 고정 수익이 필요하다고 여겨 아지오 서포터즈를 모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제화업계가 큰 타격을 입은 가운데, 아지오 또한 혹독한 시간을 보내면서 고정적인 판로를 개척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담보하는 일은 숙제로 남았다. 한때 이효리 등 유명 연예인들이 신발 한 켤레만 모델료로 받고 홍보에 나서주었으나 반짝 효과에 그쳤다. 결국 이 대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돌파구가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갈수록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청각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아지오의 진정성을 알아봐 주시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출 증대는 저에게 가장 큰 고민이고 부담이에요. 그래서 2024년에는 기업들과 사회공헌 파트너를 맺는 방안도 모색하려 합니다.”

대체 불가의 장인들
고급 수제화 브랜드인 아지오는 기본적으로 품질에 승부를 건다. 20만원대의 수제구두가 가격이나 물량공급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품질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에 아지오는 저렴한 합성피혁 대신 소가죽을 선택한다. 안감까지 천연가죽을 쓰기 때문에 여기저기 부딪혀도 잘 찢어지지 않고 충격을 곧잘 흡수해 발을 튼튼하게 지지해 준다.

공정과정도 까다롭고 섬세하다. 한 켤레의 구두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누비며 실측을 다니고 발에 꼭 맞을 때까지 수정을 거친다. 고객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다시 만드는 아지오의 청각장애인들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구두 장인들이다.

이선우 대표는 직원들의 수고와 땀이 아지오의 제일 큰 자랑이자 자부심이라며 가끔 장애인이 만든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미심쩍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제품이 좋지 않으면 도리어 장애인들을 욕보이는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더더욱 고급품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아지오의 구두를 신어본 고객들 사이에선 호평 일색이다. 실례로 무지외반증으로 신발 구입이 어려운 아내의 손을 잡고 멀리서 달려온 고객부터 감사의 편지를 보내온 이도 있었다.

이선우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은 집중력과 손재주가 고도로 발달했다. 그러나 충분한 솜씨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단절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일정한 직업을 갖기 어려운 청각장애인들은 일용직을 전전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지오에는 수년간 근무해온 장기 근속자들이 많다. 즐겁고 보람되게 일하는 청각장애인 직원들의 입술에선 감사의 고백이 흘러나온다. 아침마다 출근할 곳이 있어 행복하다는 이정숙 씨는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비전을 키워가는 열혈 사원이다.

그는 아지오는 청각장애인들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소문이 났다. 이곳에서 장애인은 이 아닌 주인공’”이라며 아지오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여러 생산직을 전전했다. , 비장애인이 대부분이었던 직전 회사에선 소통에 오해가 생겨 외로움을 느끼기 일쑤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일이 손에 익어 구두를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즐겁다.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역시 뿌듯하다며 앞으로 구두 만드는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 나아가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훌륭한 장인들을 양성하는 것이 비전이라고 전했다.

이선우 대표는 장애인들이 장인으로 거듭나면, 그 사람의 안녕과 행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다져놓은 발걸음 위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게 된다이것이 바로 아지오가 지키고 싶은 청각장애인들의 꿈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 직원이 구두를 제작하고 있다.

장애인이 행복한 기업
아지오가 청각장애인들 사이에서 소위 신의 직장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차곡차곡 쌓아온 신뢰도 지대한 몫을 했다. 그 중심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둘 사이를 이어주는 메신저인 수어통역사들이 있었다.


40여년 동안 유명 제화업체에서 구두를 제작해온 베테랑이자 아지오에서 수어통역사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한 유동술 씨는 갈등 상황에서 직원들을 중재하며 소통을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수어통역으로 인해 아지오는 거짓말이 없는 조직이 됐다고 치켜세웠다.

매일 아침 스탠딩 회의를 통해 전직원에게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아지오가 사회적협동조합에서 다시 출발한 만큼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철학 아래 회사의 운영 상황을 가감 없이 공유하는 것. 덕분에 직원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하고 자연스레 주인의식을 갖는다.

이선우 대표는 솔직히 아지오에 처음 왔을 때, 통장 잔액을 보고 내가 문을 닫으러 온 원장이구나란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때 직원들에게 재정 상태를 공개하면서 일부 직원은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전환해야겠다고 조심스레 말하며 펑펑 울었다. 그런데도 저에게 오히려 괜찮다고 토닥이며, 위로를 건네준 고마운 직원들이라고 했다. 

반대로 이따금씩 몰려드는 주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면, 직원들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진다. 이렇듯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직원들을 볼 때 에너지가 넘친다는 이선우 대표.

그는 하루에 서른 켤레씩 구두가 팔려도 한 달에 서른 명의 청각장애인이 새 삶을 얻을 수 있다새해에는 이 같은 바람이 실현돼 남은 빚을 모두 청산하고 직원 수가 서른 명을 넘어서면 좋겠다고 바랐다.

“‘
광야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라던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제게 짙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아마 아지오가 진정한 안정을 찾는 날이 광야를 다 지나는 날 아닐까요. 아지오에게 성공이란 청각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하루빨리 장애인들도 당당하게 국가에 세금을 내는 날이 오기를아지오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청각장애인들이 직접 제작한 수제구두의 모습.
아지오의 수제구두는 최고급 품질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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