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르포] 노숙인들 “한파 속 따뜻한 음식에 감사…건강한 새해 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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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르포] 노숙인들 “한파 속 따뜻한 음식에 감사…건강한 새해 나기를”
  • 정하라 기자
  • 승인 2023.12.27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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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 노숙인들이 전하는 ‘새해 소망’

노숙인 구제사역 펼치는 ‘다니엘선교센터’ 이은태 목사
200여명 교인 대부분 노숙인…15명 직분자로 세워져

“새해 소망, 별거 있나요? 새해엔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25일, 8년 만에 수도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 소식이 들려왔다. 대설특보로 온 거리가 새하얗게 빛났던 이 날, 흰 눈 소식이 달갑지 않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었다. 연일 영하권이 계속되는 날씨에 수원역 인근에 쪽잠을 청하는 노숙인들에게는 한파 속 쏟아진 함박눈은 불청객과 다름없었다. 그나마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인 ‘정(情)나눔터’가 추운 겨울 노숙인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5시, 날이 어둑해질 무렵 수원역 6번 출구를 나와 수원역광장에 위치한 정나눔터 앞으로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차츰 눈은 잦아들었지만, 오전에 내린 눈으로 한껏 질퍽해진 땅을 밟는 노숙자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그럼에도 쉼터에 모인 다른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 노숙인들은 서로를 반기며 안부를 물었다.

지난 25일, 성탄절 수원역 6번 출구를 나와 수원역광장에 위치한 정나눔터 앞으로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원역 노숙인들의 ‘새해 소망’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다니엘선교센터(이사장:이은태 목사)는 매주 월요일 수원역 정나눔터에 방문해 노숙인과 독거노인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먹거리와 생필품 꾸러미를 나눈다. 2019년 수원에 다니엘선교센터를 설립하고 노숙인 구제사역을 펼치고 있는 이은태 목사는 성탄절의 의미를 설명하며 쉼터에 모인 200여명의 노숙인과 독거노인들을 향해 안부를 물었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그동안 너무 추웠죠? 독감이라도 걸리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분을 위해 많이 기도했습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인사를 나누는 이은태 목사가 반가운 듯 몇몇 노숙인들이 큰소리로 화답한다. 일사불란하게 선물꾸러미를 포장하고 재료 준비를 마친 봉사단은 노숙인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떡과 어묵국, 음료를 전한다. 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우는 이들 사이로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하는 캐럴이 울려 퍼진다.

지난 25일 다니엘선교센터 이은태 목사는 성탄절의 의미를 설명하며 쉼터에 모인 100여명의 노숙인과 독거노인들을 향해 안부를 물었다.

“바람도 쐴 겸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날씨는 조금 춥지만,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인사도 나누니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추운 날씨에도 섬겨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독거노인 이명자 씨(75‧가명)는 무료 배식이 있을 때마다 비슷한 환경에 있는 노인들을 만날 수 있어 적적한 마음이 해소되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하루 시간 대부분을 홀로 보내지만, 집에서 나와 필요한 생활용품도 받고 주변 독거노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고 했다.

2024년 새해를 며칠 앞둔 이 날 노숙인들의 새해 소망을 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건강한 몸으로 새해를 보내는 것’을 기원했다. 또 매주 노숙인을 위해 물품을 전달하고 예배를 드리는 다니엘선교센터의 한결같은 섬김과 나눔의 손길에는 ‘감사’를 고백했다.

끼니에 맞춰 이곳을 방문하는 노숙인 박 모씨(73)는 “추운 날씨에도 교회에서 매번 이렇게 섬김을 베풀어주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라며, “새해 소망은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이다. 저뿐 아니라 여기 오신 모든 분도 새해엔 더욱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김 모씨(62)는 “매주 교회의 큰 섬김을 받는다. 이렇게 한결같이 오랫동안 섬겨주시니 너무 감사하다. 물품도 받지만, 예배를 같이 드리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이라며, “새해 소망은 몸이 건강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엘선교센터는 매주 2회 수원역 정나눔터에 방문해 노숙인과 독거노인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먹거리와 생필품 꾸러미를 나눈다.

“섬김받았던 이들이 베푸는 삶으로”

이 자리에는 다니엘선교교회 직분자들을 비롯해 수원 각지의 교회에서 온 봉사자들이 함께 특송을 전했다. 노숙인들도 한목소리로 찬양을 따라 부르며 추위로 잊고 있었던 성탄의 의미를 떠올려본다. 다니엘선교교회 직분자들은 이전에는 노숙인들의 위치에서 섬김을 받던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섬기고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됐다.

백윤승 집사(다니엘선교교회)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이웃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라며, “최대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선물을 받아 가길 바라는 마음에 저는 일절 선물을 받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해 소망으로 그는 “많은 사람이 자립할 수 있길 바란다. 물론 나누는 것도 좋지만 다른 노숙인들도 하루빨리 자립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뉴질랜드에서 30년간 선교사역과 노숙인 사역을 위해 헌신해온 이은태 목사는 수원에서의 필요를 발견하고, 2019년 수원시 장안구의 7층 건물을 매입해 다니엘선교센터를 세우고 노숙인 섬김 사역을 본격 전개했다.

수원역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노숙인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먹거리를 주면 됐지 왜 예배까지 드려야 하느냐는 일부 노숙인들의 원성도 있었다. 하지만 따뜻한 음식과 함께 정겨운 찬양이 울려 퍼지고, 예배를 드리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노숙인들도 자연스레 마음을 돌려 하나둘 예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수원역에서 물품을 배급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주일예배를 드리며 맛있는 식사를 대접합니다. 또 센터의 한 층은 다양한 물건을 비치해놓고 노숙인들이 필요한 물건을 한가지씩 가져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이 목사의 권유에 따라 다니엘선교센터에 발길을 내딛고 교회에 등록한 노숙인이 200여명이 됐다. 100%에 가까운 교인이 독거노인 또는 노숙인 출신이다.

다니엘선교센터에 입주해 연합사역을 펼치고 있는 다니엘선교교회(담임:박갑도 목사) 송시아 사모는 “초반에는 여러 명의 노숙인이 한데 모이다 보니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다툼이 일어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며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주 안에서 모두가 형제, 자매라고 고백하게 됐다. 이제는 교회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반가워하는 이들이 많다. 몇 개월 사이에 복음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전했다.

다니엘선교센터가 수원역 노숙인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꾸러미를 포장하고 있는 봉사단.

‘청지기의 소명’으로 노숙인 사역 시작

이날 현장에서 만난 이은태 목사는 노숙인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하나님의 강권적 부르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목회자로서 이 땅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을 돌보아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스도인이 선한 행실로 어려운 이웃을 돕지 않으면, 사람들은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끝내 알지 못할 것”이라며 구제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본분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사회에서 가장 작고 복음에 소외된 노숙인들을 대접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먹을 것만 준다면 사회사업으로 끝나겠지만, 복음을 전할 때 이들의 진짜 생명인 ‘영혼이 구원받게 됨’을 믿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앞으로도 독거노인은 계속 늘어날 텐데 이 땅에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 천국 복음은 가장 필요한 것”이라며, “이들에게 시급하게 복음을 전파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삶을 더욱 행복하게 보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 노숙인 사역이 그가 펼치는 구제사역의 전부는 아니다. 38세에 신학공부를 위해 뉴질랜드에 맨손으로 들어왔던 그는 뉴질랜드에서 오클랜드시티 노숙자 사역, 장학생 사역, 선교 비즈니스 사역, 해외 선교사역 등을 20년 넘게 이어왔다. 또 오클랜드에 교육기관인 에딘버러칼리지를 세워서 크리스천 영어교육과 장학금 지원 등의 선교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매달 빈곤국 30개국에 선교비 지원, 국내 탈북자 사역과 선교사 자녀 지원 등 그의 구제와 나눔사역은 끝이 없다. 마치 구멍 난 독에 물을 채우는 것처럼 그의 사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누고 ‘베푸는’ 사역이다.

다니엘선교센터 내 다니엘선교교회 주일예배에서 이은태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끊임없는 ‘공급하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목사는 “사실 노숙인들에게 한두 번의 식사를 준다고 해서 당장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계속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필요한 모든 재정을 채워주셨다”고 고백했다.

그는 하나님이 부어주신 재정적인 풍요로움을 철저히 하나님이 물질의 주인 되심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 그가 밝힌 재정의 비밀은 이렇다. 30여년 전, 뉴질랜드에서 하나님은 무(無)에서 약 17만평의 땅을 기적적으로 주셨으며, 이 땅의 일부를 매각함으로 약 60억원의 재정을 얻게 됐다.

그 돈이 종잣돈이 되어 뉴질랜드에 영어전문 교육기관인 에딘버러칼리지와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AEC 빌딩), 다니엘 크리스천 캠프장 등을 세웠다. 선교센터에는 세계적인 성경번역 선교단체인 위클리프(Wycliffe)와 뉴질랜드 오엠선교회 등 17개 국제 선교단체가 무상으로 입주해 있다.

최근에도 그러한 기적이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4층짜리 빌딩을 매입했고, 1년 만에 30억의 시세 차익을 얻게 됐다. 단 한 번의 경험이라면, 단순히 운으로 치부했겠지만, 그의 인생 30년 동안 끊임없는 재정의 풍요와 ‘채우심’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 그는 엄청난 수입을 남김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위해 흘려보낸다.

이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쏟아붓는 모든 비용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채워주신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재물의 주인은 따로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됐고, 목회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소외된 이웃을 섬기기 위한 재정적인 필요는 채워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늘 부족한 것은 섬기는 손길이다. 교인 대부분이 노숙인 출신이기에 왕성한 사역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다. 고정적인 봉사 인원 20여명만 있어도 섬길 수 있는 영역이 매우 늘어나기 때문에 성실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봉사자들을 찾고 있다.

2024년 새해 소망으로 이 목사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복음을 전함으로 구원의 길로 이끌고 싶다. 앞으로도 독거노인은 계속 늘어날 텐데, 제 꿈은 최소 1천명 이상을 섬기며 매일 점심을 대접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며 “이들 인생의 끝이 천국 길이 되도록 돕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다니엘선교센터는 올해 15명의 직분자를 세웠다. 이은태 목사(사진에서 맨 오른쪽)와 박갑도 목사(오른쪽에서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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