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교 총회장도 지냈고, 가깝게 지내는 유관재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80년대 초 목사님은 결혼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결혼했기에 마음은 빨리 공부 끝내고 돌아와야지 했는데, 그곳에서의 생활은 내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다 하더라구요.
“이 목사님~ 빨리 공부 끝내고 돌아와야 하는 내게 2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는 전혀 그런 시간을 허락해 주지 않더라구요. 설교도 거의 할 기회가 없었구요.
매일 새벽기도 차량 운행을 해야 했고, 교회에 관리집사님이 계셨지만 연세가 많으셔서 내가 차량 관리도 많이 도와줘야 했습니다. 차가 오래돼 낡은 부분이 많았기에 차수리센터에 가서 맡기고 찾고… 해야 할 일도 많았습니다.
하루는 자괴감이 들더라구요. 내가 이러려고 유학 왔나 하는 마음이요. 빨리 공부를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선 목회와 관계없는 잡일만 하게 되고 공부할 시간적인 여유도 별로 없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에 제게 이런 마음을 주셨어요. <지금 이 순간이 사명이다>라는 마음이요.”
“‘앞으로 무얼 어떻게 할 것이다’ 하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나중에 큰일을 할 거다’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곳이 사명이고, 이 순간 주어진 사명을 기쁨으로 잘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마음이 들었구요.
그렇게 부담스러웠던 잡일들 허드렛일 같은 것들이 귀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더라구요. 매일 한 시간씩 새벽기도 차량을 운행해야 하는 일도, 어떤 때는 새벽기도를 위해 거의 두 시간 정도를 운행하는 일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되더라구요.
후에 시간이 지나서 그 교회에서 저를 부흥회 강사로 초빙했는데요. 사실 그게 부흥회 강사로 초빙한 게 아니라. 그 교회의 담임자로 청빙한 거였어요.
역사가 제법 있는 교회니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유학을 왔다가 그 교회를 거쳐 갔겠어요? 그런데 그 교회는 나를 담임으로 청빙했더라구요. 물론 한국에 섬기는 교회가 그 당시 있어서 그 제의를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그때 깨달은 게 <지금 현재가 사명이다>라는 거였습니다.”
남보다 많이 가진 현재, 남보다 더 많이 배운 현재, 남보다 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현재, 남보다 더 마음에 부담이 가는 현재 말입니다. 지금 현재 그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지요?
부천 성만교회 담임